“태풍의 길목에 서 있으면 돼지도 날 수 있다.” 이 말은 중국 샤오미 그룹의 설립자 레이쥔이 한 말이다. 처음에는 애플의 짝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이 기업의 성공 비결은 '변화의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변화의 속도와 폭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표준을 선점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무한 기술전쟁이라 불러도 좋을 치열한 현장이다. 세계와 연결된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기술전쟁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을 때는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그 흐름에 올라타려는 경쟁의 최전선에는 기업이 있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업의 활동은 정부 정책에 크게 영향받는다. 정부는 세금과 정책 및 자금 지원을 통해 기업의 기술개발을 돕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신기술이 가져올 검증되지 않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을 규제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느 정도 규제가 적절한지는 정부와 이해관계자 간 조정 및 합의를 통해 정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규제와 관련해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기술 변화와 관계된 다층적인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때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거나 너무 늦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전자식 마스크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팬데믹으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시대에 국내 한 전자기업은 소형공기청정기를 부착한 전자식 마스크를 개발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마스크와 전기장치가 결합된 제품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어 당장 판매할 수 없었고, 그 기준을 마련하는 사이에 전자식 마스크는 스페인·대만 등 해외 20개국에서 먼저 출시됐다(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올 상반기 중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 사례는 국민 안전과 신산업 진흥이라는 가치 충돌을 신속하게 조율할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과 규제는 불가분 관계에있으며, 많은 분야에서 이와 같은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과거와는 다르게 규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해 왔다.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크게 세 가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첫째 2019년 규제샌드박스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현행법 내에서 새로운 제품기술 활용에 제약이 있더라도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경우 임시로 시장에서 시험검증해 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 자동차 소프트웨어(SW) 무선 업데이트 등을 허용했다. 도심지역 수소충전소 설치, 공유주방, 택시 동승 서비스 등을 실증할 수 있도록 특례도 부여했다.
둘째 경직된 기존 규제 방식에서 벗어나 신제품신기술 허용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종전에는 이식 가능한 장기가 13종으로 나열되어 있었다(포지티브 규제). 그 결과 13종 외의 장기 이식에 대한 기술개발 유인이 적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3종 외에도 안정성을 갖춘 장기는 '장기등이식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식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정부는 이러한 네거티브 규제 전환 과제를 지금까지 500개 이상 발표했고,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셋째 신산업 규제혁신 로드맵이다. 규제로 인한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고 나서 개선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미리 특정 산업 분야의 예상 가능한 규제와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자율주행차, 드론, 수소차·전기차, 가상현실·증강현실, 로봇, 인공지능(AI), 자율운항선박 등 7개 분야를 대상으로 로드맵을 마련해 종합적·선제적 접근을 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환경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규제패러다임 적용을 추구해 왔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로 인해 작년까지 약 4조9000억원의 투자 유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관련된 제품서비스 매출도 약 1600억원 증가했다. 6000명이 넘는 신규고용 효과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주관하는 규제정책평가에서 2018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만큼 민간 기술 발전을 뒷받침하는 이 새로운 규제혁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규제를 정비하거나 혁신해 나갈 때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다. 규제의 변동은 일반적으로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든다. 누군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기회를 줄이기도 하고, 직업의 안정성을 해치기도 한다. 특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기존 제품서비스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면 갈등은 더 심해질 수 있다. 한국판 우버를 표명한 '타다' 서비스를 둘러싼 택시업계와의 갈등은 바로 이런 사례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했다. 핀란드의 경우 택시요금, 택시면허 총량 규제 등을 폐지하면서 차량공유서비스를 도입해 규제의 형평성을 높였다. 싱가포르는 차량공유 플랫폼 운송사업자를 택시와 유사한 정도로 규제하는 방향을 택했다. 면허를 통해 공유차량의 총량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택시 운전자와 유사한 수준의 운전자 교육 등을 받도록 규제했다. 호주는 공유차량을 이용할 때마다 택시업계를 위한 상생펀드에 1달러를 내도록 했다. 공유경제와 같이 신산업으로 향하는 세계적인 흐름은 거스르기 어렵다. 따라서 갈등이 있을 때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방안을 만들고, 신기술이 기존 사업자에게도 가져다줄 기회를 설계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규제개혁 관점에서 이 일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기술 발전은 더 가속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불가분 관계에 있는 정책, 즉 규제는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네거티브규제, 신사업 규제혁신 로드맵 등 새로운 시도는 태풍의 길목을 읽고 그 방향으로 쏘아 올린 로켓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1단 로켓이 연소하며 궤도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1단 로켓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내고, 2단 로켓을 점화해서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는 것이다. 2단 점화의 핵심 요소는 새로운 규제혁신을 확대해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동시에 기술혁신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조율해 내는 것이다. 기업의 기술 발전과 정부의 규제혁신 노력이 합해져서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행정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역임한 재정전문가다. 과거 청와대 국정상황실,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 근무하여 국정 전반을 보는 시각과 국제감각도 겸비했다는 평가다. 2020년 5월 국무조정실장에 취임한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먹거리인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헬스, 공유경제 등 신산업분야 규제혁신에 노력하고 있다. 기업이 혁신을 지속해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고 정부 부처는 칸막이 없이 협업해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