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의 호소]일상화된 편법…중기는 왜 52시간을 힘들어 하나

원청기업과 '수직적 관계' 대부분
주문 맞추려면 초과 업무 불가피
'서류상 52시간제' 편법 일상화 초래
기업 사정따라 유연한 정책 운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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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업체에서 52시간 넘었으니 '네. 그럼 내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합니까. '알았어, 다른 데 갈게' 하지. 대기업이나 여력이 있으니까 대응하지, 중소기업은 너무 힘듭니다.” (대기업 협력사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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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비는 그대로인데 주 52시간을 지키며 일을 하니 인건비가 늘어나죠. 석사 이상 고급 엔지니어가 최대 80명까지 있었는데, 점점 줄이다가 이제는 주 52시간 등 사업하기 어려워 사업을 접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설계 엔지니어링 대표)

주 52시간제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됐다. 2020년 1월에는 50~300인 미만 중소 사업장에 적용됐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5~49인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첫 계도기간이 9개월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2년이 거의 다 됐다. 그럼에도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은 왜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힘들다는 것일까.

◇대기업 원청 요구를 어떻게…

가장 어려워하는 경우는 '필요한 때, 일을 못 할 때'다. 대기업 스마트폰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의 설명이다.

“출시 전, 개발 단계라도 불량이 나면 엔지니어들이 다 달라 붙어서 처리를 해야 합니다. 왜? 고객사가 요구하니까요. 52시간 문제될 수 있으니까 '그래 봐줄게' 이럴 것 같습니까. '알았어, 다른 데 가겠다'고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래에서 아웃(OUT) 되는 겁니다.”

완제품 회사와 부품 회사는 협력 관계다. 부품 없이는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수평적'이기보다 '수직적'인 관계가 현실이다.

여기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원청인 대기업 요구를 무시할 협력사는 없다. 얼마나 신속하게 대처 하느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된다.

여력 있는 대기업은 충원을 통해 24시간 조직 운용도 가능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한정된 인원으로 대기업 원청의 요구를 맞추다 보면 결국 52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달 총합으로 평균 52시간을 맞출 수 있게 유두리를 준다지만 신형 스마트폰이 나오는 연말이나 시즌이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갑'이 수시로 부르는 데 대응 안 할 '을'이 세상에 있습니까. 52시간 때문에 못 한다고 얘기할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선택이 '서류상의 52시간'이다. 실제로는 52시간을 넘게 일하지만 기록상으로 52시간을 지키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휴식 시간을 활용합니다. 회사에 있었어도 실제 모든 시간을 근무하는 게 아니죠. 담배 피러 갈 때도 있고, 쉬러 갈 때도 있고. 52시간 넘지 않게 자발적으로 휴게 시간을 활용하도록 유도합니다. 당국서 나왔을 때 이걸 보고 어떻게 판단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대비 차원에서 맞추고 있습니다.”

자발적 유도는 그나마 낫다. 시스템상으로 강제 52시간을 유지하는 경우가 숱하다.

이 관계자는 주 52시간 취지에 맞게 사람을 더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업 경영이 그렇게 말로 다 되는 줄 아냐”면서 “단가인하 압력에 수익성 확보도 쉽지 않은데, 자꾸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만 늘어나니 정부가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모가 작을 수록, 부담은 더 커진다

소수의 핵심 인력이 회사 경쟁력을 좌우하는 첨단 분야나 벤처·스타트업에 52시간제는 더 풀기 어려운 숙제다.

반도체 설계 업체 관계자는 “개발 인력은 충원 자체가 어려울뿐 아니라 충원을 한다 해도 다른 사람의 역할을 100% 대체할 수 없어 52시간을 지키기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같은 기간 동안 시간을 나눠 목표를 달성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인원을 충원한다 하더라고 52시간 제한은 곧 프로젝트 지연을 낳게 된다”면서 “이 경우 사업 기회 자체가 소멸될 수 있는 리스크가 돼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괄적인 주 52시간 제한보다 연장수당의 정확한 지급, 포괄연봉제 금지 등 근로자를 착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충원이 필요한 회사는 충원을 하고, 근로시간 집중이 필요한 회사엔 임직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유도하는 게 적절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 스마트폰 부품 협력사인 B사 관계자도 “회사마다 사정이 다른 데 일괄적으로 52시간을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금, 인력, 시스템 등 회사 운용에 있어 기초 체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주는 52시간제 부담은 그 강도가 또 달랐다.

패션 스타일에 맞게 인공지능으로 상품을 추천해주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알고리즘 고도화를 위해 추가 개발자를 채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5명이 넘게 돼 52시간 적용을 받게 된다”면서 “창업 멤버들은 어느 정도 감내를 할 수 있지만 신규 채용 강제할 수 없어 기존 인력들과 균형·형평성 등의 문제로 채용을 결정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특별 취재팀=윤건일 벤처바이오부장(팀장) benyun@etnews.com 권건호, 유근일, 조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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