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상담사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합니다. 어서 정신차리고 일들 합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주인공 진아(공승연 분)는 신용카드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원이다. AI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상담을 처리해 매번 고객 만족도 1위 직원으로 선정된다. 진아가 매번 1위를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AI처럼 일하기 때문이다.
한 달 사용한 신용카드 내역을 틀리지 않게 읽으라는 고객 갑질에도 흔들림 없이 명세서를 읽어가고, 본인이 타임머신을 개발해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카드를 쓸 수 있냐는 고객에겐 아직까지 회사에서 신용카드까지 과거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죄송하다고 무색무취하게 답한다.
현재 AI 상담사는 많은 기업이 이용하며 고도화 중이다. KT는 올해 상반기 음성인식, 음성합성, 자연어 처리, 텍스트 분석이 가능한 AI를 개발해 AI콘택트센터(AICC)에 적용 중이다. 상담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상담 중 고객에 지원이 필요한 시점을 파악해 전담 상담사로 연결해준다.
클라우드 기반 AICC 서비스는 보안인증까지 확보해 보안 우려도 해소했다. 대기업, 금융사, 교육기관, 공공, 유통 등 다양한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기업간거래(B2B) 서비스 분야에서 상당한 매출을 실현하고 있다.
119 콜센터에서도 AI가 이용된다. 신고 폭주 시 AI가 신고 접수를 받아 1차로 상황 판단을 진행해 긴급 상황은 119 상황실로, 단순 민원은 정부 민원 안내 콜센터로 연결한다.
한국갤럽도 여론조사에 AI를 이용하고 있다. 단순 반복 설문은 AI가 담당해 업무 효율을 높였다. 광주광역시는 AICC를 적용한 AI 스피커를 이용해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메 죽것당께” 등 전라도 사투리까지도 인식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위급상황 발생 시에는 119로 전화 연결된다.
다만 아직까지 AI 고객센터가 인간 상담사를 완전히 대체한 곳은 없다. 상담원과 전화 연결 이전 간단히 문제 해결을 시도하거나 상담 중 상담사를 보조하는 정도로 이용된다.
현재 대다수 상담은 인간 상담사가 진행한다. 콜센터 직원의 감정 노동과 우울증은 고질적 문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콜센터 노동자 139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11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0.3%가 우울증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이에 콜센터 상담원 이직률은 68.5%에 달한다. 전체 노동자 평균 이직률(5.1%)의 약 13배다.
영화에선 AI 같은 상담사만 살아남고 인간 감정을 가진 상담사는 도태된다. AICC가 고도화되며 언젠간 AI 상담사가 인간 상담사를 대체할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상담원은 고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음을, 그들도 고객과 다름없이 그들의 일을 하는 동등한 노동자라는 점을, 무엇보다도 AI가 아닌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