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64K에서 '10나노 EUV D램'까지…반도체 신화창조

1974년 파산 직전 한국반도체 인수
각국 투자 주저할 때 승부수 띄워
미국-일본 제치고 최초 개발 잇따라
추격자서 선도자 '반도체 초격차'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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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6일 열린 삼성 반도체 30주년 기념행사.왼쪽부터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이건희 삼성 회장, 부인 홍라희씨,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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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세계적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수출 20% 이상을 책임지는 메모리 반도체가 있기까지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치열한 고민과 승부사적 기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시기는 반도체 산업 성공 이후부터다.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이건희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은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주식회사 지분 50%를 사재를 털어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 진입을 시도했다.

당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주요 경영진이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반도체 사업이 되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지만 첨단 기술에 대한 그의 관심과 고집을 막지는 못했다.

삼성 반도체는 곧바로 성과를 보였다. 이듬해 디지털손목시계용 칩을 개발한 데 이어, 1976년에는 당시 최고 기술이던 3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는 부천공장을 건립, 양산에 성공했다. 1978년 상호를 삼성전자반도체주식회사로 바꾼 이후 본격적 양산 체제도 갖추게 됐다. 1983년 기존 3인치 팹인 A라인에 이어 B라인에 4인치 공장을 증설하고 반도체연구소, 에피텍셜(EPI)동, 마이크로 생산 라인 설치 등으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반도체 산업에는 기술적으로 '퀀텀 점프'를 이끌며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발돋움했다. 1982년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고 10년 뒤인 1992년 지금도 활발한 반도체 양산이 진행되고 있는 화성·기흥 공장에서 업계 처음으로 64M D램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일본 D램 업체 도시바가 고수해오던 제조 기술을 모방하지 않고 차별화한 기술을 구현했다. 당시 업계 1위였던 도시바는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 방식을 택했지만, 이 회장은 D램을 위로 쌓아 올리는 스택 방식을 택해 격차를 좁히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불황에 대한 위기가 엄습하던 1990년대, 세계 모든 반도체 회사가 투자를 주저할 때 이건희 회장은 또 다른 승부수를 띄웠다. 기흥캠퍼스에 8인치 웨이퍼 전용 5라인 투자하면서 16Mb D램을 월 300만개까지 생산할 수 있는 당시 최대 규모 공장 건립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실패하면 1조원 이상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 회장 결단으로 8인치 팹 운영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 회장이 승부처에서 내린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미국과 일본 등 기존 반도체 강자들을 차례로 제치고 승승장구를 거듭한 삼성전자는 현재까지 D램 시장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고 40% 이상 점유율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를 내다보는 이 회장 특유 경영 전략으로 다양한 투자를 성공해 삼성전자를 초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D램 시장 1위에 오른 뒤에도 '기술로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반도체 기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삼성전자 반도체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1년 4기가 D램 양산, 2007년 3D 낸드플래시 개발, 2012년에는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세계 반도체 역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일들을 처음으로 해내면서 삼성전자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2000년대에는 생산 능력 또한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 회장은 2000년부터 화성공장 가동을 지휘하고 2002년부터 세계에서 처음으로 12인치 웨이퍼를 가공할 수 있는 화성 11라인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12인치 웨이퍼는 기존 범용이었던 8인치 웨이퍼보다 생산량이 2.5배나 늘어나 당시 제품 원가를 대폭 낮추는데 기여했다.

이 생산라인을 기반으로 2000년대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2위까지 올라서는 비약적 성장을 일궈냈다.

이 회장 주도 아래 탄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화성캠퍼스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산에 성공한 극자외선(EUV) 라인 V1이 자리 잡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를 칩 회사 대신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2030년까지 1위를 하겠다는 목표로 평택, 화성 생산기지에 천문학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D램 분야에서도 10나노 3세대 D램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EUV 기술을 접목해 '초격차' 기술을 만들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은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 20% 이상을 차지하는 황금알이 될 수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앞서간 사람만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 회장만의 '스피드' 철학이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이병철 회장이 창업자였다면, (이건희 회장은) 지금의 삼성전자 신화를 만들었다”며 “이는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우리 정보기술(IT) 업계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과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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