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형 공공건물만 의무화
한화큐셀·신성이엔지·LG전자 등
앞선 기술 가지고도 활용 못 해
업계, 모듈 표준·규격화 미흡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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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PV가 적용된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빌딩 전경. [사진= 전경련 제공]

우리나라가 뛰어난 태양광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세계적인 '제로에너지 빌딩' 추세에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공공주택 등에 재생에너지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을 경우 관련 산업 생태계 구축은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도시통합형 태양광 모듈 기술력이 앞서있다. 도시통합형 태양광이란 도시에 적용 가능한 태양광이다. 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BIPV)이 대표적이다. 태양광 모듈을 벽면 등에 설치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BIPV 모듈 생산 업체로 한화큐셀과 신성이엔지, LG전자 등이 꼽힌다. 이들은 고출력 BIPV 모듈을 지속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학연이 BIPV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과 한국화학연구원(KRICT), 한국기계연구소 부설 재료연구소(KIMS), 고려대, 성균관대 등은 BIPV 출력을 높이고, 반투명화할 수 있는 양면 수광 및 박막 기술, 페로브스카이트 원천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은 고효율 투명 발광 태양집광판(LSC)이 적용된 창호형 태양광 모듈을 개발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경쟁국과 기술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BIPV 모듈 제조사가 우리보다 적은 2곳, 1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나와 하너지, 파나소닉 등이다.

세계가 BIPV에 주목한 것은 시장 성장성 때문이다. 저탄소 배출 사회로 접어들면서 신재생에너지 적용 범위는 건물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모더 인텔리전스는 세계 BIPV 시장이 2019년 59억5000만달러에서 2024년 142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럽연합(EU)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소비율을 최소 27%까지 달성하는 '제로 에너지 빌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 중심으로 BIPV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도화된 BIPV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세계 추세에 뒤처지고 있다. 밸류체인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정책 부재가 꼽힌다. 정부는 올해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를 시행했지만, 공공주택을 제외했다. 적용 대상은 1000㎡ 이상 공공건물로 좁혔다. 그나마 서울시가 태양광 보조금 지급 조건을 벽면, 지상 등 모든 공간으로 확대, 설치를 장려하고 있지만, 의무 시행과는 거리가 멀다.

한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BIPV 태양광 모듈 비용은 메가와트당 약 4억원으로 일반 발전용 약 2억원 대비 2~2.5배 비싸다”면서 “의무 시행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비용을 늘려 BIPV를 설치하겠나”고 말했다.

BIPV 표준화와 규격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건설사 등 수요자 요구는 제각각이다. 기존 또는 신축 건물마다 적용 크기와 디자인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태양광 모듈 제조사 입장으로서는 맞춤형 모듈을 제작할 수 없다.


태양광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BIPV 확대 의지가 있다면, 보조금 확대보다 의무 설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면서 “그래야 건설사가 건축물 설계 시부터 BIPV 설치를 염두에 둘 것이고, 이에 따라 수요가 늘면 BIPV 모듈 단가는 하락하고 제조사는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선순환이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