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최근 후보자 등록을 마감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다. 모두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면서 2016년 20대 총선 투표용지 33.5㎝보다 10㎝ 이상 길어졌다.
그나마 비례대표 후보자 등록을 신청한 38개 정당 가운데 3개 정당이 빠지면서 애초 예상한 것보다는 짧아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독당, 한국국민당, 한나라당 등 3개 정당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른 요구 사항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보고 후보자등록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다. 이들 정당까지 포함하면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50㎝를 넘을 뻔 했다.
투표용지가 50㎝를 넘든 넘지 않든 그다지 다를 것은 없다. 현재 도입된 투표지 자동분류기로 개표할 수 있는 34.9㎝는 이미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2002년 지방선거 이후 18년 만에 일일이 손으로 투표지를 확인하는 '수개표'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알다시피 투표용지가 길어진 것은 비례대표 후보 정당이 2016년 총선 21개에 비해 14개나 늘었기 때문이다. 유권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좋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투표용지 상단에 위치한 새로운 (그러나 기시감이 있는) 정당을 보면 마냥 그런 생각만 들진 않는다.
수개표 작업으로 인해 선거 결과를 늦게 알게 되는 것이야 좀 더 기다리면 되고,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쭉 늘어선 35개 정당명을 확인하는 수고야 감수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다 감안해도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거대 정당의 '촌극' 수준 선거전은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연동형'으로 시작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마무리된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빠진 채 사상 초유의 4+1 협의체를 통해 처리됐다.
당연히 한국당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이것도 잠시.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찾아 나섰다. '위성정당'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낸 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거듭났고, 옆자리에는 '미래한국당'이 들어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처음엔 미래한국당 출범을 '꼼수'라며 강력히 비난했지만 어느 새 민주당 옆에도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또 하나의 위성정당이 자리했다.
이후 모정당과 위성정당 간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둘러싼 갈등 속에 벌어진 명단 취소와 재확정, 투표용지 상위 기호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현역의원 '꿔주기'와 '셀프제명'이 또 하나의 촌극으로 이어졌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5%에 이르는 비례대표 47명을 뽑는 48.1㎝ 전장(戰場)은 이렇게 확정됐다.
거대 정당의 꼼수 전략으로 셈법이 복잡해졌지만 30여년 만의 선거법 개정 이후 치러지는 첫 국회의원 선거다. 애초보다는 좁아졌지만 소수 정당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의석 수를 늘릴 기회는 분명히 남아 있다. 물론 거대 정당에도 비례대표를 앞세워 진영을 넓힐 기회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투표율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지만 48.1㎝라는 역대 최장의 비례대표 전장이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253명의 지역구 의원을 뽑는 것 못지않게 비례대표 의원을 고르는 한 표도 중요하다. 4·15 총선까지 보름 남짓 남은 기간에 내 마음속 '1당'이 어디인지 신중히 생각해 봐야겠다.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