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접어 드니 실제 나이보다 한두 살 많은 '한국식 나이'보다는 자꾸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올해 초 가장 반갑게 들려온 소식은 한국식 나이를 '세계 표준'인 만 나이로 바꾸자는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의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 발의였다.
누리꾼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이 뉴스에 아이디 un12****는 “12월생은 며칠 만에 2살 되고 억울해요. 꼭 만 나이 해 주세요”, jess****는 “빨리 현실화됐으면… 나 12월 31일생임. 세상에서 제일 억울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러나 이 일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법안은 발의된 지 거의 9개월이 지났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3월 14일 행정안전위원회의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처리되지 않았다.
이 법안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 민생 현안과 관련된 법안은 여야 간 갈등이 첨예하다. 개인 간(P2P) 금융 관련법, 데이터3법, 금융소비자법 등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25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 후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이 무려 1만5797건에 이른다.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둔 20대 국회 회기는 끝나 가고 있다. 남은 시간은 7개월 남짓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면 의원들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총력을 쏟을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1만건이 넘는 법안의 자동 폐기될 공산은 크다.
그야말로 인력 낭비, 재정 낭비다. 올해 4월 말 선거법·공수처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국회가 공전하면서 처리를 못한 탓이 컸다. 19대 때는 계류 법안이 1만건을 살짝 넘긴 채 회기가 종료됐지만 20대 국회는 이를 훌쩍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국회'라는 구호가 무색하다. 이 탓에 만 나이의 꿈은 물 건너 갔지만 데이터·금융업계의 혁신을 위한 꿈은 무산되지 않길 바란다.
국회가 단순히 법안을 발의해서 반짝 주목을 받고 끝낼 것이 아니라 실제 통과될 수 있도록 책임감을 높일 때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