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수도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차로 40여분을 달여 진입한 도심에는 빽빽한 고층 빌딩과 함께 한국기업 간판과 가게가 어렵지 않게 보인다. 삼성, 효성 등 베트남에 진출한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롯데마트·롯데리아, 신한은행 등 생활 속까지 한국기업이 깊숙이 녹아 있었다.
베트남은 지난해 한국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 중 하나다. 그중 정보통신기술(ICT)은 가장 기대가 높은 영역으로, 지난해에만 수백개 기업이 현지법인이나 사무소를 세웠다.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인력, 높은 ICT 수요, 국가차원의 투자 등 신흥국 중 매력도로는 단연 최고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베트남의 모습이다. 베트남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국가 전체가 큰 변화를 맞는다. 내로라하는 한국 ICT기업도 고전한다. 떠오르는 신남방 국가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베트남에 우리 기업도 공부가 필요하다.
◇111조 베트남 ICT 시장, 더 큰 투자 몰린다
지난해 기준 베트남 ICT 시장 규모는 111조6086억원으로, 이중 하드웨어(HW)가 약 90%인 99조3080억원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영역이 대표적이다. 소프트웨어(SW) 산업 역시 급성장 중이다. 지난해 관련 산업 성장률은 13.8%에 이르며, 기업 수도 1만개가 넘는다. 인구 당 1대 이상 보유한 스마트폰과 4G LTE 접속률이 95%를 넘을 정도로 풍부한 통신 인프라가 강점이다.
최근 베트남은 ICT를 동력으로 대대적 혁신에 나섰다. 핀테크, 스마트시티, 5세대(5G) 이동통신 등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정부는 '현금 없는 사회' 정책을 추진, 2020년까지 비현금결제 비율을 9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말까지는 15세 이상 베트남 인구 70%가 은행 계좌를 보유하도록 정책드라이브를 건다. 베트남 제1 통신사인 비엣텔은 내년까지 5G 적용 네트워크를 구현하다고 발표했고, 외국계 기업이 베트남 현지에 데이터센터 구축을 강제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온 나라가 ICT로 성장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했다.
박윤정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하노이IT지원센터장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에서 모바일 이용률과 인프라가 가장 선진화된 국가”라면서 “최근 베트남 정부도 4차 산업혁명 대응과 현대화,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ICT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韓기업 '러시', 핀테크·보안 수요 높아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20만명, 기업은 4800개가 넘는다. 90%가 호찌민, 하노이에 몰린다. IT기업도 최근 3년 사이 1000여개 이상 진출하면서 붐을 이룬다. 이들이 바라보는 시장은 핀테크, 보안, 전자정부 영역이다. 베트남 정부가 202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를 이루겠다고 발표하면서 핀테크 관련 기술 수요가 높다. 베트남 내 뱅킹 서비스나 보험, 카드 등 금융 서비스가 태동하면서 기회가 생기고 있다.
채윤태 핀투피 베트남 법인장은 “트래픽을 갖고 있는 잘로와 비엣텔 등 대형 IT기업이 카카오페이를 벤치마킹해 핀테크를 구현하려고 한다”면서 “빙그룹 등은 금융정보를 모아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해 관련 분야 자금과 인력이 몰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 통신, 의료 등 사회 핵심 인프라 구축이 이어지면서 이를 뒷받침할 보안 솔루션 수요도 높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IT기업 솔루션이 고가에 패키지인 것을 감안할 때 한국기업 경쟁력은 존재한다.
김기문 인포플러스 이사는 “베트남 기업이나 기관 보안 체계가 취약하다보니 최근까지도 랜섬웨어 등 피해가 적지 않다”면서 “보안관제, 엔드포인트 보안 솔루션 수요가 존재해 한국에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베트남에 들여와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IT 수요를 적극 이용해 현지 비즈니스까지 확장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 베트남에서 롯데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한국기업으로 꼽힌다. 롯데마트는 베트남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10여개 점포를 개설했고, 롯데리아와 롯데시네마 등도 동반 진출했다. 각 점포 운영·관리에 필요한 IT 인프라는 롯데정보통신이 도맡는다. 이 같은 수요를 바탕으로 2009년 설립 후 192명의 인력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스마트시티와 의료, 핀테크 영역까지 진출을 꾀한다.
신한은행 역시 베트남 현지에 38개 지점을 내는 등 외국계 은행 '넘버원' 자리를 차지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원격으로 IT를 운영, 관리했는데 덩치가 커지면서 베트남에 글로벌 IT센터를 구축했다. 신한DS는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금융그룹 IT 인프라를 운영·관리하며 보안, 금융, 데이터베이스(DB) 등 다양한 솔루션 사업도 준비 중이다.
이광식 신한DS 베트남 법인장은 “주 역할은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금융그룹 IT 인프라를 운영하는 것인데, 우리가 가진 IT 역량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의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베트남에 판매도 준비 중”이라면서 “단순히 비즈니스 외에도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등 현지 산업과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도 기울인다”고 말했다.
◇인력·사업 한계 존재…신중히 접근해야
베트남 ICT시장의 가장 큰 매력은 풍부한 인력과 투자다. 역설적으로 한국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다. 에이티커니가 발표한 세계 주요 IT 아웃소싱 기업 순위에서 베트남은 2017년 기준 6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역량을 갖췄다. 또 2016년 기준 IT 종사자는 78만명이 넘고, 정부는 2022년까지 100만명까지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발 역량을 보유한 인력은 전체 3분의 1 수준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 분석이다. 대부분 삼성이나 LG, SK 등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생산공정에서 근무하는 인력이 IT종사자로 집계된 영향이 크다. 베트남 전역에서 신규 IT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IT개발자 기근은 심각하다. 한국기업은 물론 베트남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간 경쟁으로 치닫는다.
이용석 인포플러스 이사는 “베트남 사업에 가장 어려운 점은 쓸 만한 개발자 몸값이 너무 오른 데다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면서 “베트남 대기업인 빙그룹이나 비엣텔에서 기존 임금 두 배 이상씩 주면서 흡수한 데다 일본 기업은 아예 대학과 협약을 맺고 졸업과 동시에 인력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베트남 직장인 한 달 평균 월급은 30만원 선이다. 영어가 가능할 경우 40만~50만원까지 뛰는데 IT 개발자는 10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몸 값이 폭등하는 상황이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IT 프로젝트 참여도 제한적이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IT기업 95% 이상이 주고객은 한국 기업이다. 사실상 베트남 현지 기업이나 기관에 직접 제품, 서비스를 공급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미국, 유럽, 일본 IT기업은 물론 베트남 정부가 육성하는 자국 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은 FPT 등 베트남 대형 IT서비스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거나 삼성SDS처럼 현지 기업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취한다. 또 베트남 현지 대학과 협업해 연구소를 설립, R&D 기능을 강화하고 인력 수급 방안으로 삼기도 한다.
김은일 롯데정보통신 베트남 법인장은 “부족한 개발인력 수급을 위해 하노이IT대학 내 각종 인프라 지원은 물론 호찌민 국립대 내 R&D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라면서 “당장 베트남 시장에서 많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보안, 금융 등 가능성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시장을 선점한다는 점에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