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지키면서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까지 장악했지만 정작 액정표시장치(LCD)와 OLED 핵심 소재는 여전히 외산 의존도가 높다. 과거 일본이 세계를 주도하던 LCD 시장에 한국이 후발주자로 뛰어든 뒤 빠르고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면서 세계 1위로 올라섰지만 정작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OLED는 LCD와 달리 한국이 가장 먼저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역시 주요 소재 원천기술은 일본과 미국 등이 선점했다. 차세대 소재 연구개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기업 중 한국은 전무하다. 차세대 제품을 구현하는데 소재 기술 난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이 주도권을 쥔 소재 기술을 찾기 힘들어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LCD 1위지만 국산 액정 전무…OLED 핵심 소재도 외산 의존
한국은 1995년 LCD를 처음 생산한 이후 2006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35%로 1위로 올라섰다. 2006년 10월에는 처음으로 디스플레이 수출액이 연간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일본을 제치고 LCD 1위에 올라섰고 관련 부품도 국산화해 디스플레이 생태계가 성장했지만 정작 핵심 소재는 국산화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액정은 독일 머크가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일본 치소가 일부 참여하는 소재다. 머크는 액정을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통신, 조명, 스마트윈도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기판유리와 커버윈도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LG화학이 독일 쇼트의 특허와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디스플레이용 기판유리에 투자해 상용화했지만 공급물량이나 기술력 등을 감안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미국 코닝, 일본전기초자(NEG), 아사히글라스, 독일 쇼트가 주 공급사다.
LCD와 달리 OLED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고 중소형·대형 OLED 모두 세계 점유율 90% 이상 장악했지만 정작 핵심 소재는 물론 기술 난도가 높고 핵심 공정에 속하는 주요 장비·부품을 외산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연구조합이 발간한 '미래 디스플레이 소재기술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LED 주요 소재에 걸쳐 외산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017년 기준).
플렉시블 OLED용 폴리이미드 기판은 일본에 100% 의존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 우베코산과 합작한 에스유머트리얼즈에서 액상 상태인 폴리이미드 바니시를 공급받아 기판을 제작한다. LG디스플레이는 일본 카네카에서 기판용 폴리이미드를 공급받는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투명 OLED를 구현하려면 투명한 폴리이미드 기판이 필요한데 여기서도 일본 영향력이 크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수출 심사를 강화한 불화폴리이미드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사용하는 불화수소 함유량, 합성하는 다른 소재의 종류와 함유량 등이 다르므로 실제 규제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OLED 발광재료(EML)는 한국의 덕산네오룩스·LG화학 등이 45%, 일본 이데미츠코산이 27%를 점유했다. 가장 기술 난도가 높은 청색 발광재료는 일본 이데미츠코산이 독점했다. 촘촘한 특허를 피해 경쟁할만한 청색 발광소재를 개발하는 게 상당히 까다롭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적색과 녹색 인광 도펀트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UDC도 쟁쟁한 경쟁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소재기업 한 관계자는 “UDC 재료를 대체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원천특허를 분석하고 이를 피해가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부터 큰 난관이었다”며 “가뜩이나 소재산업 경쟁력이 취약하고 영세기업이 많은 국내 시장 상황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컬러필터의 경우 한국 80%, 일본 20%로 한국 점유율이 높지만 원재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컬러필터에 사용하는 적녹청(RGB) 색소는 일본과 유럽 등에서 전량 수입한다.
한국디스플레이연구조합은 보고서에서 “국내 업체 시장점유율이 높은 분야도 소재를 만들기 위한 원재료는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수”라며 “정공주입(HIL), 정공수송(HTL), 전자수송(ETL) 등 OLED 효율과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유기물은 일부 국산화했지만 대부분 원천기술과 특허는 미국과 일본이 보유했다”고 분석했다.
차세대 공정기술로 꼽히는 잉크젯 프린팅 분야는 한국이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했지만 관련 소재 기술 연구개발은 해외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원천기술은 일본이 보유했고 독일 머크, 미국 3M과 듀폰이 관련 재료를 개발하고 있다.
잉크젯 프린팅 장비도 해외 기업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도쿄일렉트론과 미국 카티바가 이 분야 강자로 평가받는다. 한국은 세메스와 LG PRI가 장비를 개발하고 있지만 해외 장비사 제품보다 먼저 생산라인에 적용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보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재료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 활약은 드물다. 기술 난도가 높은 청색 인광재료를 대체하기 위해 열활성화지연형광(TADF) 등 대체 소재 개발을 시도하는 사례가 꾸준하지만 유럽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한 재료기업 관계자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 소재기업 규모가 영세하고 일본 등 해외 경쟁사가 워낙 쟁쟁해 맞경쟁이 힘들다”며 “소재 특성상 연구개발 기간이 긴데 이를 믿고 기다리면서 투자해줄 자본이나 기업도 마땅치 않아 차세대 소재 연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산화 열쇠는 '소재기업 뚝심+전방기업 의지+정부 지원'
일본 정부가 불화폴리이미드(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수출 심사 강화 품목으로 지정했지만 당장 관련 제품 생산이 중단될 정도의 파급력은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폴리이미드 특성상 소재 합성 방식에 따라 규제를 피해갈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서 기업별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불화폴리이미드는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보호하는 새로운 커버윈도인 투명 폴리이미드 소재로 사용된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관련 제품을 이미 개발하고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투명 폴리이미드는 정부가 2010년 시작한 '세계시장 선점 10대 핵심소재(WPM)' 사업 일환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기업이 초기 개발을 시작했고 정부 WPM 사업으로 지원받으면서 연구개발과 상용화 준비까지 마칠 수 있었다.
WPM 사업은 정부자금 1조원, 민간 자금 1조원씩 총 2조원이 투입됐다. 기존 정부 연구개발 사업이 3~5년 단위로 이뤄졌지만 이 사업은 약 8년에 걸친 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추진돼 취약한 한국 소재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국산 투명 폴리이미드는 일본 제품보다 아직 품질 면에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면서 일본 스미토모화학 제품을 우선 채택한 이유다. 국산 제품의 생산기술 등에서 아직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10년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소재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핵심소재를 반드시 상용화하겠다는 경영자의 강한 뚝심과 전방 기업의 강력한 의지, 실패를 새로운 연구개발 자양분으로 삼는 정부 지원 문화가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