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병원 CIO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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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SW융합산업부 기자

“비용 절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을 벌어야만 존재 이유를 인정받습니다.” 한 대학병원 최고정보책임자(CIO)의 말이다. 그는 병원이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 플랫폼으로 주목 받지만 정보기술(IT)부서는 물론 투자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며 한숨을 쉰다.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하지만 병원에서도 IT조직은 돈을 쓰는 조직이다. 기본적인 병원 전산 인프라를 운영·관리해야 하고, 신규 시스템 도입이나 정부 정책에 따른 변경 사항을 즉각 전산 시스템에 적용해야 한다. 최근 강화된 병원 정보보안 정책에 따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등 보안 시스템 구축도 이들 몫이다. 연중 30억~50억원이 운영·유지에만 들어간다. 5~10년 주기인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 구축까지 겹치면 수백억원까지 필요 예산이 늘어난다.

IT조직은 경영진에 이 금액에 대해 설득하는데 난관을 겪는다. 기본 운영 비용에 더해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솔루션과 예방 차원 보안 시스템까지 투자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치열한 논쟁과 설득, 협상으로 예산을 따오기는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다. IT 혁신으로 의료 서비스가 좋아지고, 환자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병원 경영진이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10억원 비용 절감을 이끌어도 5억원 수익을 내는 부서가 인정받는 환경이다.

우리나라 대표 상급종합병원 42개 중 전산팀 수준을 넘어선 IT 전담 조직이 있는 곳은 10여 곳 남짓이다. 전체 예산 중 IT 투자하는 비중도 1%가 넘는 곳은 10%가 채 안 된다. 매년 들어가는 운영·유지비용을 제외하고 신규 투자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병원 CIO는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기존 IT 조직 혁신이다. 최근 병원 전산 시스템은 클라우드, 빅데이터, AI 등 첨단 IT 접목이 시도되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체계로 변한다. 하지만 기존 인력은 전산 시스템 운영·유지에 최적화됐다. 단순 전산 인력에서 데이터를 수집, 가공, 분석하는 전문가나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인력으로 재편해야 한다. 조직을 개편하고, 기존 인력 재교육이 필수지만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부 병원에서는 노조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실상 전산실 재편을 포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병원에서 변화 바람은 조금씩 분다. 공급자(병원, 의사) 중심이던 기존 환경에서 수요자(환자) 중심의 서비스 체계로 변한다. 패러다임 변화를 지원하는 최전선이 IT 조직이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은 그대로다. 투자 없이 서비스 혁신을 추구하라는 병원 경영진에 CIO 어깨가 무겁다.

병원 경영진 탓만 할 수 없다. 통제된 의료서비스 가격, IT 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 부재 등 투자 여건이 부족하다. 병원에서 IT 투자는 과거 보험청구나 진료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료, 경영, 연구 등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최종 수혜자는 경영진이 아닌 환자라는 점에서 병원 IT 조직 지원과 재평가가 필요하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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