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국가핵심기술 지정 논란이 수출 장벽으로 현실화했다. 중국 패널사가 한국 장비업체에 제품 수출에서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는 문서를 요구하는 등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장비 업계는 최대한 빨리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가핵심기술 지정 여부를 심의할 디스플레이 전문위원회 개최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우려가 커졌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다수 OLED 장비 업체들이 중국 패널사로부터 장비 판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패널사는 한국 OLED 장비를 구매키로 했다가 추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원하는 일정에 장비를 입고하지 못하거나 아예 구매를 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OLED 장비업체 A사의 대표는 “최근 중국 패널사로부터 OLED 장비 판매에 이상이 없음을 보증하라는 요구를 받아 난감하다”면서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관련해 언제까지 논의하고 언제 최종 결정을 하는지 뚜렷한 정부 일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내 절차가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이 판매에 이상이 없음을 보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패널사와 장비업계는 OLED 장비를 국가핵심기술로 새롭게 지정하는 방안을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대부분의 전·후공정 OLED 장비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패널사 의견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국내 장비기업은 해외 경쟁사와의 역차별, 수출 제동에 따른 고사 우려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중에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국가핵심기술 개정안을 심의·의결한 뒤 이달 안에 개정안을 고시할 계획이었다. 이후 OLED 장비 지정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기존 일정 계획을 잠정 보류하고 세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까지 해당 내용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위원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어 장비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A사 대표는 “정부 일정과 방침이 불분명한데 기업이 제품 판매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냐”면서 “추후 정부 정책이 확정돼 장비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 신뢰도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거액을 배상해야 하는 문제까지 감안해야 한다”며 답답해 했다.
OLED 장비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될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중국 패널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착기 등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일부 핵심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공정에 한국 장비업체가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레이저어닐링(ELA), 레이저리프트오프(LLO), 자동광학검사(AOI) 등 일부 핵심 공정은 일본보다 한국 장비 기술력이 높게 평가받고 있어 자칫 장비 수급에 제동이 걸릴 경우 전체 투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디스플레이 전문위는 지난해 12월에 열린 이후 아직까지 차기 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패널사, 장비사 등 각 산업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만큼 갈등 최소화를 위해 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별도로 꾸린 정보보호협의회에서 일정 부분 협의점을 우선 도출해야 전문위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회 내 정보보호협의회는 산업부, 국가정보원, 패널사, 장비사, 소재사 등으로 꾸려진 협의 기구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