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OLED 장비 국가핵심기술 지정 논란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는 요구가 정부에 제기되고 국내 장비 기업은 자칫 강력한 규제로 작용해 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업계 의견만 수렴하고 있다. 중국의 무분별한 장비 기술 카피캣을 막아 OLED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내 장비기업이 되레 역차별을 받아 일본 장비 경쟁사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라는 지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작 기술 유출 통로가 된 것은 '장비 수출'이 아닌 '인력 유출' 아니냐는 지적도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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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비 카피캣 그냥 못 둬”

국내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사는 장비사와 협의해 OLED 핵심 공정 장비를 해외에 일정 기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국내 패널사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플렉시블 OLED나 대형 OLED 생산에 사용된 일부 핵심 장비가 대상이 됐다. 플렉시블 OLED용 레이저리프트오프(LLO)나 레이저어닐링(ELA), 8세대 대형 OLED용 유기물 증착장비, 3D 라미네이션 장비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패널사와 장비사가 함께 개발한 제품이 해당한다. 장비사가 개발하더라도 세계 최초 제품에 적용하기 때문에 패널사가 협업하지 않으면 장비를 완성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완성 장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놓고 장비사와 패널사의 '공동 개발'에 대한 해석은 항상 분분하다. 서로 기여도가 더 높다고 판단해 장비사는 단기간 내 수출을, 패널사는 일정 기간 경쟁사 판매 금지를 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10.5세대 액정표시장치(LCD)를 양산하면서 한국 LCD 기술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OLED 기술 격차를 더 벌여야 하는 국내 패널사 입장에서는 중국에 수출하는 핵심 OLED 관련 장비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장비기업 톱텍이 삼성디스플레이에 납품한 3D 라미네이션 장비를 무단으로 중국 경쟁사에 수출한 혐의로 사장 등 주요 임원이 구속 기소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3D 라미네이션 장비는 스마트폰 상하좌우면 끝부분이 구부러진 갤럭시 시리즈 특유의 '쿼드 엣지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핵심 장비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쿼드 엣지 디스플레이를 초기 개발할 당시 수율이 낮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만큼 구현이 쉽지 않은 기술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톱텍 논란 이전에도 3D 라미네이션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해당 기술과 장비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수출 시 정부 심사를 거쳐야 하므로 수출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해외 패널 경쟁사가 쉽게 쿼드 엣지 기술을 모방하기 힘들게 된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낸 연구보고서도 도화선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연구에는 OLED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OLED 설계, 소재, 부품, 제조, 공정, 구동, 장비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파악됐다. 사실상 OLED 생산 전 과정에 걸친 모든 기술이 해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그동안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듈조립공정을 비롯해 소재, 부품, 장비까지 모두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는 요구가 제기된 것이다. 당장 모듈조립공정에 해당하는 3D 라미네이션을 비롯한 장비 기업 반발이 거세다. OLED 관련 소재, 부품 분야 기업들도 추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OLED 소재·부품이 광범위해 어떤 분야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는 구체 논의는 아직 없다.

OLED 장비와 모듈조립공정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면 정부가 중국 OLED 굴기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발생한다.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은 국가핵심기술을 수출하는 경우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은 기술은 수출 신고를 한 뒤 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만약 심의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수출 금지 등의 조치를 받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한국이 LCD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을 때 해외 장비사 제품을 뜯어보고 연구하며 실력을 쌓은 것처럼 중국도 OLED 선두인 한국 기술 정보를 최대한 습득하고 모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기술이 새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는 없지만 워낙 중국이 거액의 정부 지원을 받고 세계 전문인력을 흡수하다보니 한국이 느끼는 위협이 크고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장비사 고사 뻔해…대기업 인력유출 방지책 필요”

후공정에 속하는 모듈조립공정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장비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한국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 일본 장비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므로 국내 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국가핵심기술로 OLED 장비와 모듈조립공정이 지정돼도 수출은 할 수 있다.

다만 정부에 수출 가능 여부를 요청하고 심의 받는데 일정 시간이 걸린다. 수출 중지 처분이 내려지면 장비사나 해외 고객사 모두 계획한 일정에 타격을 입는다. 생산 라인을 조성하는 해외 패널사 입장에서는 구매 가능성이 불투명한 한국 장비보다 구매 제약이 없는 일본 장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장비 구매를 요청하고 실제 장비가 입고되기까지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 차질 위험을 주는 한국 장비를 굳이 구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내 한 장비기업 대표는 “한국 패널사가 세계 최초로 플렉시블 OLED와 8세대 OLED를 양산하면서 국내 장비기업도 일본보다 우수한 장비를 공급하거나 세계 최초 장비를 개발·납품한 사례가 생겼다”며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장비가 일본 기술력에 밀리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에 장비를 수출할 때 기본적인 장비기술 정보를 구매처에 넘겨야 하는데 장비사 입장에서 관련 핵심기술을 넘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기술 유출 통로는 국내서 일자리를 잃고 중국으로 넘어간 전문인력인데 수출 장비 탓만 한다”고 토로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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