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37>스타트업에 사칙은 어떤 의미인가?

회사는 사칙 내지 사규에 의해서 운영된다. 사칙(company regulations)이란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준이자 근거이기 때문에 회사 구성원은 사칙을 준수해야 하며, 사칙에 근거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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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회사가 점차 커짐에 따라 사칙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 많아져 사칙 또한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 중에는 견실한 사칙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창업 초기 회사 구성원 간 불협화음이 유발될 때 대표 원인은 바로 사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함께 창업한 여성 동업자가 갑작스런 임신으로 육아 내지 출산 휴가를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한다. 이는 당연한 권리 중 하나로 당연히 휴가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마다 출산 및 육아 휴가 수준이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별도의 출산 휴가에 대한 사칙을 마련하지 않은 스타트업의 경우, CEO와 당사자 사이에 상호 기대하는 휴가 내지 사내 복리후생 수준에 적지 않은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배우자가 이직해 원거리로 이사 가야 할 직원이 유연근무제를 요청해 올 수 있다. 통상적인 스타트업 기업은 규격화된 근무시간이 아닌 자유로운 근무 문화를 지향하는 곳이 많다는 이유로 편하게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은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성과급 지급, 사무용품 구입 및 교체, 법인카드 사용, 휴가, 포상, 징계 등 거의 모든 회사 업무가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CEO가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정한다면 이 과정에서 반드시 적지 않은 문제가 유발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창업한 기업이 견실한 회사의 사칙을 모방해 업무의 세부 내용까지 모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아직 회사 업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칙부터 작성할 경우 해당 사칙이 사문화되거나 수시로 변경해야 하는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 내용에 대해 과도한 규정화를 지양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창업 초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이러한 적극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01년 보스턴 소방본부는 직원이 일수 제한 없이 사용하던 유급 휴가를 15일 이내로 제한한 바 있다. 휴가 제도의 악용을 막을 뿐만 아니라 휴가 사용 일수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휴가 사용 일수가 오히려 증가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초 신청의 경우에는 이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러한 현상은 휴가 일수에 제한이 없음에도 사명감으로 알아서 휴가 일수를 조절하던 소방관에게 '15일까지는 사용해도 되는구나'라고 여기게 만든 것이다.

규정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보다 명확히 제시해 주는 또다른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 탁아소에서 탁아소에 맡긴 아이를 부모가 정해진 시간에 데려가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벌금을 부과하면 부모가 지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약속된 시간에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의 수가 더 줄었다. 이전까지는 자신으로 인해 퇴근도 못하는 보육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부모에게 벌금이 면죄부를 준 것이다. 심지어 벌금을 금전적인 비용으로 생각하고, 벌금을 내고 지각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도 생겨난 것이다.

창업 초에는 회사 업무를 규격화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측치 못한 난관을 극복하는 데 조직 구성원 헌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사칙은 분명 필요하지만, 과도한 사칙은 구성원의 헌신과 적극성을 저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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