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이 대한민국 바꾼다]<중> 4차 산업혁명도 나노에 달렸다

현재보다 10배 빠른 통신 시스템, 종이처럼 둘둘 마는 디스플레이, 포켓 사이즈의 슈퍼로봇….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등 과거 상상에 머물렀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혁신 기술의 시발점은 나노기술이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신소재가 먼저 개발돼야 새로운 부품과 장비, 제품 혁신으로 이어진다.

구리의 약 100배 높은 전기적 특성과 다이아몬드 2배의 열전도성, 신축성 등 특징으로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은 AI용 초고속 반도체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등에 쓰인다.

현재 나노 신소재 중 활발하게 상용화가 이뤄지는 탄소나노튜브(CNT)는 고성능 이차전지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을 만드는 필수 소재로 자리 잡았다.

나노소재, 나노소자, 나노센서, 나노부품, 나노시스템 등 나노기술은 제조·정보기술(IT)·의료·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드론, 로봇, 3D 프린팅 등 주요 기술과 융합돼 발전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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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블 스마트폰, 롤러블 TV…미래 디스플레이 필수 기술

나노 기술은 초고해상도 고효율 프리미엄 디스플레이를 실현하는 핵심 기반이 됐다. 특히 한국이 주도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양자점(QD·퀀텀닷)은 전통 액정표시장치(LCD)를 넘어 차세대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시대를 여는 대표 기술로 자리 잡았다.

OLED는 현재 스마트폰과 대형 TV에서 프리미엄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폰에 채택되기 전에는 수동형(PM OLED) 기술 방식으로 MP4 플레이어나 피처폰 기기의 외부창으로 사용됐다.

OLED는 LCD보다 응답속도가 빨라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을 표현할 때 잔상이 없어 현장감이 풍부하다. 별도 광원이 필요하지 않아 TV 두께를 4~5㎜ 수준으로 얇게 만들 수 있다. OLED가 스스로 발광하므로 전력 소모도 LCD의 절반 수준이다.

OLED가 상용화되면서 평평한 형태를 탈피해 구부러지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종이처럼 돌돌 마는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액정과 달리 OLED는 구부리면 휘어지면서도 특성을 유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상·하·좌·우가 구부러진 스마트폰에 이어 화면을 접었다 펼 수 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이 상용화를 앞뒀다. 필요할 때 화면을 말았다가 펴는 롤러블 TV 시제품도 공개됐다.

OLED는 여러 성질을 지닌 얇은 두께의 층을 여러 겹 쌓는 형태로 구성된다. 각 층은 나노미터 단위로 얇다. 가루 형태의 유기재료를 500℃ 이상 고온에 기화시켜 기판에 얇게 달라붙도록 만든다.

퀀텀닷도 OLED와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꼽힌다. 기존 LCD에 퀀텀닷 소재를 입혀 색재현력을 높임으로써 더 풍부한 색을 표현하는 프리미엄 TV를 구현할 수 있다. OLED와 결합해 OLED 기술을 보강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QD 소재 스스로 발광하는 차세대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퀀텀닷은 지름이 2~10나노미터(㎚) 수준의 입자로 광학·전기적 특성이 있다. 퀀텀닷 결정은 빛에 노출되면 일정 주파수의 빛을 방출한다. 퀀텀닷 크기와 모양을 제어해 디스플레이에 맞게 응용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재료뿐 아니라 백라이트유닛용 CNT, 미세 배선전극용 잉크, 컬러필터용 나노분산안료 등 디스플레이를 형성하는 전 분야에 걸쳐 나노 기술이 적용된다. 차세대 공정기술로 기존 증착 공정을 대체하는 잉크젯 프린팅과 롤투롤 공정도 대표적인 나노 기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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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 감도 높이고 배터리 밀도 높이는 나노

거미줄처럼 모든 기기와 사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센서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특히 스스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스마트 센서는 앞으로 10년 내 세계에 1조개가 필요한 트릴리언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센서를 기계 부품에 내장하기 위해서는 소형화 기술이 필요하다.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 필요전원, 모듈 모두 소형화가 돼야 한다.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성능과 동시에 대량 수요에 적합한 수준의 낮은 가격을 갖춰야 한다. 나노 기술을 접목하면 감도는 높이면서 전력 소모는 낮추고 인체에도 적합한 센서를 개발할 수 있다.

김일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차준회 연구원 연구팀은 염료 입자를 나노섬유에 결합해 입냄새를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했다. 농도가 1ppm 이하인 극미량 가스로도 확인이 가능한 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날숨을 이용한 질병 또는 마약 검사, 유해 환경가스 검출 등에 활용이 가능하다.

이성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등 연구진과 소메야 다카오 일본 도쿄대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세계 최초 개발한 전자피부도 나노 기술을 바탕으로 했다. 나노섬유 기판을 이용한 전자피부는 기존 플라스틱이나 실리폰 기판을 이용한 전자피부와 달리 산소, 땀, 체액 등이 투과돼 염증을 유발하지 않아 장시간 건강 정보를 수집하는 데 적합하다.

이차전지도 나노 기술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분야다. 이차전지 업계는 에너지밀도를 높이면서도 제조원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에 CNT를 도전재로 활용하면 전기 흐름이 좋아지고 출력도 개선돼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차세대 전지로 주목받는 리튬메탈 전지나 리튬황 배터리, 리튬에어 배터리도 나노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 없이 상용화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 신재생에너지 발전 기술인 내양전지 분야에도 나노기술을 접목해 현재 기술의 이론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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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나노기술로 의료 혁신

“주사 한 방으로 모든 게 해결됐으면 좋겠다.”

건강이 나빠져 수술이나 정밀 진단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한 생각이다. 의료로봇이 로봇공학에서 나노기술 연구가 가장 활발한 영역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나노 의료로봇은 기존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향후 의료 시장에서 강력한 혁신동력이다. 초소형 로봇이 몸속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발견하고, 정확한 위치에 약물을 투여하거나 수술 없이 종양을 제거하는 등 예방부터 치료까지 전 영역에 걸쳐 변화가 예상된다.

나노로봇은 기술 난도가 높다. 로봇을 나노 사이즈로 만드는 것 자체가 도전 과제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를 달아야 되는지도 고민거리다. 미세하고 복잡한 혈관을 이동하기 때문에 정밀한 구동과 제어도 필수다. 자기장, 초음파, 신소재 등 다양한 기술이 실험되는 혁신의 한복판이다.

올해도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수차례 의료용 나노로봇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 연구진은 지난달 혈액 속을 수영하며 박테리아와 독소를 제거하는 나노로봇을 공개했다. 인간 머리카락 약 25분의 1 크기로 작은 이 로봇은 금 나노 소재를 도입했다. 초음파로 전원을 공급하면 화학 연료없이도 빠르게 이동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인체에 삽입된 나노로봇에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주파수가 조금씩 다른 여러 전파를 쏘아 일정 지점에서 겹치게 해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다. 인체를 거치며 약해지는 전파를 중첩해 로봇이 이동하기에 충분한 전력량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과학원(CAS)은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DNA 나노로봇 운반기술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DNA를 종이접기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스스로 크기와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종양 억제물질을 보호하다가 특정 조건에서만 활성화시킨다.

국내에서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주관으로 막힌 혈관을 뚫는 마이크로·나노로봇이 개발 중이다. 이 로봇은 체외에서 자기장을 통해 무선 제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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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나노 넘어 피코 시대를 준비해야

1992년 나온 인텔의 368 컴퓨터용 중앙처리장치(CPU) '386 SX-33'의 회로 선폭은 1마이크로미터(㎛, 1000나노)였다. 이 제품 이후 반도체 분야는 나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m)를 나타낸다. 그해 인텔은 800나노 선폭의 486 컴퓨터용 CPU를 처음으로 내놓았다. 매년 선폭 축소 과정을 거쳐 지금은 10나노 안팎 선폭의 CPU가 출시돼 컴퓨터에,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다. 회로 선폭이 좁아지면 더 작은 면적의 칩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다. 성능은 올라가고 전력 소모량은 줄어든다. 1990년대 슈퍼컴퓨터로도 해내지 못한 연산을 이제는 손바닥 위 스마트폰에서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나노 미세화의 덕분이다.

올 연말이나 내년에 출시되는 스마트폰에는 7나노 공정의 CPU가 적용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는 2020년경 3나노 공정을 개발, 이듬해부터 양산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속도라면 어느 순간 나노 시대는 가고 피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면서 “현재 나노산업이 반도체 기술에 근간을 두고 있는 만큼 피코의 시대가 열리면 전 산업군에 관련 기술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했다.

1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5~10만 분의 1에 해당한다. 원자 하나 크기가 0.2나노 정도다. 1나노 공정 시대에는 원자 5개 굵기의 회로에 전류를 흘려야 되는 것으로 그 구현의 난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선 기술 개발의 한계는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은 “반도체 기술의 한계는 없다. 다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노를 넘어 피코(Pico) 시대로 넘어가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다. 나노가 10억 분의 1m라면 피코는 1조 분의 1m를 의미한다. 반도체 전문가는 “피코 시대로 접어들면 현재 10나노 미만 공정에서 활용되는 장비나 재료, 공정 기술 모두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솔루션을 찾는 이들이 피코 시대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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