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자 계열사가 '각자도생'에 나선 지 1년여 만에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 삼성전자에 의존한 사업모델에서 탈피하면서도 실적은 상승하는 성과를 만들었다. 각 계열사마다 독자 생존모델을 강화하고 있다. 새 고객선 확보에도 공을 들이면서 향후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지난해 2월 28일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그룹 경영을 해왔던 삼성은 계열사 '각자도생'이라는 새로운 경영체제에 착수했다. 각자도생의 핵심은 각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의존도를 줄이고, 그룹 내부거래가 아닌 외부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룹 차원의 관리 아래 성장해왔던 계열사로서는 엄청난 변화이자 새로운 시도였다.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는 가능성을 입증하며,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 실적이 일제히 상승한 것이 증거다.
그룹 맏형 격인 삼성전자는 상반기에도 쾌조의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2분기부터 시작한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1분기까지 이어갔고 2분기에도 1분기에 버금가는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2분기에 스마트폰 사업 부진과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사업 부진이 겹쳤지만 반도체 사업 호황이 다른 사업 부진을 상쇄했다. 사상 최고 실적 기록 행진은 중단됐지만 실적 하락폭은 최소화했다.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실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실적은 삼성전기, 삼성SDI 등 전자 계열사 실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직 계열화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계열사 주요 부품을 대거 공급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 계열사 실적도 상승하고 반대로 부진하면 계열사 실적도 하락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올해는 기존 흐름을 탈피했다. 삼성전자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 S9'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했지만 전자 계열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계열사가 삼성전자 외에도 수익을 내는 새 사업모델을 발굴·육성해왔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갤럭시 S9 부진으로 카메라 모듈 사업이 주춤했지만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사업 호조에 힘입어 수익성을 대폭 개선했다. 지난해 상반기 96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올해 상반기 3294억원으로 급증했다. 세계적으로 MLCC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삼성전기 MLCC 사업은 내년까지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기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 7700억원 내외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5배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재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MLCC 가격 상승과 IT용 고부가가치 MLCC 판매가 지속됐다”면서 “MLCC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와 비슷한 상황으로, 스마트폰 성능 향상, 통신기술 발달, 자동차 전장화 등으로 견조한 수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SDI 역시 삼성전자 의존도를 많이 낮췄다. 기존에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공급하는 소형 배터리 실적이 전사 실적을 좌우했지만, 현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중대형 전지 등이 새로운 수익원이다. 이를 통해 갤럭시 S9 판매 부진 영향을 최소화하고, 실적 상승을 이뤘다. 삼성SDI는 지난해 상반기 618억원 적자에서 올해 같은 기간은 1889억원 흑자로 전환이 예상된다. 삼성SDI는 향후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중대형 전지 사업이 대폭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높은 매출 증가로 중대형전지(EV포함) 부문 적자가 축소됐다”면서 “소형전지 중 폴리머 전지가 삼성전자내 보급형 영역에서 점유율 증가로 매출 증가를 지속해 전지 부문 이익 개선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삼성SDS는 사업 구조상 실적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클라우드 등 신사업에서 외부 고객을 확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블록체인 등 신기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상반기에는 삼성전자 설비투자 증가 등으로 IT 서비스 부문 매출이 늘면서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향후 신사업 분야에서도 실적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소혜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S는) 4차산업 혁명에 부합하는 다양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고, IT서비스부문 실적이 고성장세”라면서 “향후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이 가시화된다면 추가적인 가치 재평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