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독일 기업 머크가 21세기 한국 기업에 "한국, 핵심 분야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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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창립한 독일 기업 머크가 350주년을 맞았다. 26일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글랜 영 한국 머크 대표는 '한국 핵심 산업 분야 혁신이 승부수'라고 강조했다.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한국은 핵심 산업을 혁신해야 합니다.”

글렌 영 한국머크 대표 발언은 강했다. 26일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머크 3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였다. 350년이나 된 독일 명문 기업은 한국의 핵심 산업, 핵심 분야 혁신을 요구했다.

머크는 1668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약 및 화학 전문 기업이다. 이 시기는 헨드릭 하멜이 현종 재임 시기 조선 땅 제주에 표류하고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출간하던 해다.

1668년 프리드리히 야코프 메르크는 독일 다름슈타트에 '천사약국'을 세운다. 머크는 화폐 개혁만 다섯 차례를 겪었다. 13대째 가족이 소유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기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살아남아 '불멸의 기업'이란 별칭도 얻었다. 새로운 산업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혁신한 결과다. 우리나라 100대 그룹 창업 역사가 평균 50년임을 감안하면 350년 전통 기업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 대표는 머크 혁신 핵심이 '과학 호기심'이라고 설명했다. 머크 주력 제품인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소재가 대표 사례다. 머크가 LCD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04년이다. LCD는 응용 제품이 처음 나온 1960년 이후 시장이 폭증했다.

머크는 지난 10년 동안 '세로노' '씨그마알드리치' 등 굵직한 기업을 인수했다. 생명과학, 헬스케어, 기능성소재 세 사업부로 개편했다. 기능성소재 사업은 경기도 포승에 있는 OLED 합성연구소, OLED 애플리케이션센터 등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기술에 투자했다. 협력사에도 미래 산업 환경 변화를 이해시키려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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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대표는 “중국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이 생산을 대폭 늘리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한국 제조업은 혁신으로 성장해 왔듯 지금도 어떤 부분 혁신이 가장 중요한지 판단해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머크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장기 관점 투자가 투명하고 안정된 기업 경영 구조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머크는 13대째 독일 메르크 가문에서 기업 70% 소유권을 유지해 온 가족 경영 기업이다. 메르크 오너 일가는 '경영 현안은 현장 전문가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메르크 일가는 장기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모두 맡긴다. 가문 사람이라고 해서 주는 특혜도 없다. 부의 세습과 이익 유출보다 회사 성장과 혁신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머크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21억유로(약 2조7433억원)를 투자했다. 동년 매출(153억유로) 대비 비중이 13.7%에 이른다. 매년 R&D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혁신 발판을 마련한다.

영 대표는 “머크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인은 장기 시각에서 투자와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라면서 “부가 회사에 묶여 있고 회사 발전이 오너 일가 성장으로 직결되는 우수한 지배 구조가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머크는 병자호란이 발생한지 30년 뒤 산업혁명조차 일어나지 않은 이른바 '대항해시대'에 창립됐다. 머크는 제약·전자산업 성장을 이끌었다. 조선은 200년 이상 지속된 쇄국정책으로 경쟁 자체를 가로막았다. 최근 세계 산업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에 직면했다. 한국은 중국 '산업 굴기'라는 격랑 앞에 위기를 맞고 있다. 머크는 헬스케어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혁신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영 대표는 “과거는 중요하지만 안주하면 안 된다”면서 “과거를 탄탄한 기반으로 삼아 미래 변화를 파악하고 혁신해야 불확실성이 가장 커진 현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