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의 폭발적 인기에 국내 맥주시장이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 간 국산 브랜드 맥주의 성장률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수입맥주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큰 폭의 성장세다. 맥주 트렌드가 수입맥주로 넘어가자 국내 주류업체는 너나할 것 없이 수입맥주 론칭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국내 맥주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위스키 업체 골든블루는 칼스버그그룹과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의 국내 독점 유통·판매 계약을 맺고 이달부터 본격적인 유통을 시작한다.
국내 맥주 제조사도 수입맥주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롯데주류는 3월부터 미국 맥주업체 몰슨쿠어스 인터내셔널과 계약을 맺고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를 수입·판매한다. 최근 몰슨 쿠어스의 '쿠어스 라이트'와 '블루문' 수입판매도 시작했다.
롯데주류는 과거 합작법인 롯데아사히주류를 통해 '아사히 수퍼드라이'를 판매했다. 'L' 맥주 등 일부 수입 맥주를 시장 테스트 차원에서 판매해 왔지만 몰슨쿠어스와 계약 이후 맥주 수입 사업에 본격 나서고 있는 것이다.
롯데주류는 향후 수입맥주 제품 라인업을 늘려갈 예정이다
하이트진로도 지난해 12월 호주 라이온사의 '포엑스골드'를 국내에 론칭한 데 이어 올해 1월부터는 칼스버그사와 수입 계약을 맺고 '써머스비 애플'의 판매를 시작했다. 이를 포함해 현재 기린(일본)·싱하(태국)·크로넨버그 1664 블랑(프랑스)·투이즈 엑스트라드라이(호주) 등 6종의 수입맥주를 국내에 판매하고 있다.
위스키업체 디아지오코리아 역시 흑맥주 '기네스' 외 아이리쉬 올몰트 라거 맥주 '하프', 아이리스 크림 에일 '킬케니' 등 총 3종의 수입맥주를 판매한다.
국내 주류업체들이 이처럼 맥주 수입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위스키와 맥주 시장이 정체를 겪고 있는 반면, 수입맥주 시장은 눈에 띄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맥주 수입액은 2억6309만달러(약 2850억원)로 전년 대비 45% 증가했다. 2013년 맥주 수입액이 8967억달러(약 97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3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지난해 국내 전체 맥주 시장에서 수입 맥주의 비중은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 맥주 생산은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국내 맥주 출고량은 2012년 203만㎘, 2013년 206만㎘로 소폭 상승했으나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며 2016년엔 198만㎘까지 떨어졌다.
편의점에서는 수입맥주 매출이 국산맥주 매출을 추월했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지난해 수입맥주 매출 비중이 52.9%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국산 맥주를 앞섰으며 올해 들어서도 8일까지 수입맥주 매출 비중은 56.4%에 이른다.
이처럼 수입맥주가 시장을 장악해나가자 국내 주류업체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입맥주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주세법상 가격 경쟁력에서 수입맥주에 대항할 대안이 없자 자사 제품 대신 수입맥주 판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맥주사업 질 저하를 초래해 주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파악하고 분석해 신제품을 출시하는 대신 수입맥주 판매에만 나선다면 이는 곧 국산 맥주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로서는 세수감소와 함께 수익의 상당부분을 해외 본사로 배당하고 브랜드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국부 유출도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맥주의 경우 수입맥주에 비해 조세 과정에서 역차별 문제까지 더해져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1월부터 미국산 맥주의 양허세율이 0%로 낮아진 데 이어 7월 유럽산 맥주 수입 관세가 전면 철폐 될 경우 국내 브랜드 맥주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