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투명블라인드]기업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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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은 현재 정부의 경제 정책을 “혼란스럽다”고 한다. '4대강'처럼 무작정 불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 정부의 정책 추진 의도에는 진정성을 느낀다고 한다. 그럼에도 혼란스럽다고 한다. 왜 그럴까.

최저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소득 주도 성장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궁극의 방향임에는 이견이 없다. 혁신 성장을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로 꼽는 정부 기조에도 공감한다. 혁신 성장은 '가 보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하는 길'이 맞다. 국민소득 3만2000달러를 달성하자는 목표를 건 혁신 성장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견인한다. 4차 산업혁명 정책도 일관성이 있다. 어젠다는 잘 잡았다.

그럼에도 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혼란스럽다는 소리를 들을까. 문제는 각론이다.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입사를 위한 청년소득지원제도는 민간 기업의 월급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파격 정책이었다. 산업계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는 기업을 몰랐다. 기업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톱니바퀴 같은 직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회사 경영이며, 비즈니스라는 것을. 신입사원에게 월급을 올리면 기존 상급자와 연봉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몰랐다. 상급자는 부양가족이 있고, 학원비와 분유 값에 허덕이고 있는 소시민이라는 것을 몰랐다. 기존 재직자에게도 재정 지원 방안을 추가하며 논란을 수습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이것뿐일까. '탈원전'과 '원전 수출'을 모두 강조하는 정부 정책에 산업계는 헷갈려 한다. 원전을 없애자던 청와대와 행정부가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해외 출장에 나서는 현실이 의아스럽다. 미세먼지와 원자력 공포를 없애기 위해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실효성 없는 정부의 정책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건설에 엄청난 부지 매입비용이 들어가고, 그에 따른 환경 파괴가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판도라' 원자력을 없애고 미세먼지나 유발하는 화력발전소를 없애면 전력 수급 문제는 없는 걸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전기자동차,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산업은 '전기 먹는 하마'라는 소리도 있는데….

국민들의 지지가 탄탄한 정부라고 한다. 여론조사 때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지금도 50~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당과 청와대는 지지율 기반으로 거침없이 정책을 밀어붙인다.

이상한 것은 이 과정에서 기업인은 입을 닫았다는 점이다. 기업인은 '죄인'이 됐다. 대기업과 협·단체도 공식 발언을 꺼린다. 경제·산업 이슈로 떠오른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해 업종별 영향과 의견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지만 이들은 입을 열지 않는다. 혼란이 걷히고 정리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유명한 '침묵의 나선' 현상이다.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하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발발했다. 금리와 환율도 심상치 않다. 새로운 먹거리도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핵심인 스마트폰과 전자 산업의 수출도 어렵다. 대중국 수출은 반 토막 났고,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과 무역 보복으로 우리를 겁박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 주체들의 침묵은 위험하다. 경영진이 침묵한다는 것은 투자도, 공격적 수출 전략도, 일자리 창출에도 뜻이 없음을 의미한다.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은 기업을 배제하면 실현할 수 없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늘리고, 잘살게 만드는 행동 주체는 기업이다. 우리는 지금 기업이 국가 부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행정부는 산업과 경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마다 업종마다 각기 다른 어려움이 존재한다. 정책 디테일은 소통으로 완성된다. 경제 주체들의 침묵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국가 역동성을 해친다. 되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입을 다문 경제 주체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때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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