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얘기가 특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훗날 그 기사를 다시 들춰봤을 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썼다는 것을 알곤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 특종 했다고 자위할 때 당사자는 얼마나 혀를 찼을까.
“난 돈만 벌면 돼”
삼성의 고위 경영진이 기자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겠다”고 느낀 건 아마도 이 발언을 담은 기사가 보도된 이후일 것이다. 5년 전 얘기다.
삼성 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사장에게 반도체 불산 누출 사고와 관련해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는 기사였다. 말초신경을 자극한, 앞뒤 상황 잘라먹은 그 보도는 여러 매체가 인용해 재생산됐다. 사실 그 질문은 매주 나왔던 것이다. 공식 입장을 냈는데, 자꾸 추궁하듯 물어보니 짜증이 났던 것일까. 결국 그 사장은 공식 사과했다. 그렇게 취재원과 기자의 신뢰는 깨졌다.
그 이후 물어보는 이와, 되도록 엮이지 않으려는 삼성 경영진의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날씨 좋다”며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실언을 유도한 질문에는 절대 답하지 않겠다는 어떤 강력한 의지마저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곡해 기사가 계속 나왔다.
마주치기 싫어 주차장에서 비상 엘리베이터로 행사장에 들어가거나, 얼굴만 비추고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그 입장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명함 주며 인사해도 아래위로 훑어보며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를 뜨거나, '이건 막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말까지 서슴치 않는 모습은 유감을 불러온다. 어떤 행사에서 모 기업 CEO를 우루루 쫓아가는 기자들을 보고 “꼴 보기 싫다”고 말한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정말 삼성 고위 임원 상당수가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남기도 한다.
미디어를 자꾸 피하면 실제와는 반대로 독선적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다. 그것이 곡해와 쓰레기 텍스트를 낳는다면 그 또한 모두에게 불행이다. 한국 대표기업과 미디어간 후진적 취재 매커니즘을 이젠 개선할 때가 됐다. 이쪽도 저쪽도 다시 신뢰를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