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공급 과잉 우려에도 투자액 29조원...'치킨게임' 벌어지나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시설 투자액이 시스템반도체 1위 업체 인텔과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의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시설 투자를 단행하면서 메모리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수익성 위주에서 이른바 '치킨게임'을 통한 메모리 시장 점유율 확대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15일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시설투자액이 26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투자액은 지난해(113억달러)보다 갑절 이상 급증한 수치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올해 반도체에만 29조5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IC인사이츠는 올해 반도체 업계 총 시설투자액 규모가 지난해보다 35% 증가한 90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8.6%에 이른다.
빌 매클린 IC인사이츠 대표는 “37년의 반도체 산업 역사에서 올해 삼성의 투자 규모는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IC인사이츠는 올해 삼성이 3D 낸드플래시에 140억달러, D램에 70억달러, 파운드리와 기타 투자에 50억달러를 각각 투입할 것으로 분석했다. 3D 낸드플래시는 평택 신공장 생산 능력 확대, D램은 공정 노드 업그레이드와 이에 따른 웨이퍼 투입량 손실 보완(공정 수 확대), 파운드리 10나노 생산 확대 등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IC인사이츠는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3D 낸드플래시의 공급 과잉을 야기할 것”이라면서 “SK하이닉스, 도시바, 마이크론, 인텔 등 경쟁사들의 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를 늘리거나 점유율을 잃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낸드플래시와 D램 등 메모리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중국 업체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고 IC인사이츠는 분석했다. IC인사이츠는 “올해 삼성의 투자 수준을 보면 중국 신규 메모리 생산 업체가 기존 메모리 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하지 않는 이상 같은 수준으로 경쟁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IC인사이츠는 3D 낸드플래시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에 앞서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전자신문 보도(10월 30일자 1면 삼성, D램 공급 확대 추진)를 예로 들며 D램 시장에서도 공급 과잉 우려가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이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기 위해 D램 생산량을 늘리려 한다”면서 “값이 더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화성 16라인 일부 공간을 D램 생산으로 용도를 전환하고 평택 신공장 2층에서도 D램을 생산하기로 했다. 메릴린치도 이달 초 보고서를 발간하고 삼성전자의 월간 D램 생산 능력이 앞으로 2년 동안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관련 업계에선 메모리 호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된 이후 하반기부터 점차 꺾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2019년에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 견해다. 삼성증권, KB투자증권 등은 최근 SK하이닉스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보류'로 바꿨다.
다만 김영우 SK증권 수석연구원은 “대만 조사업체는 올해 초에도 공급 과잉 전망을 내놨는데 그 예측은 결과로 볼 때 틀렸다”면서 “D램과 3D 낸드플래시 공히 공정 난도가 높아져서 과거보다 많은 투자를 해도 물량 확대가 크지 않고, 클라우드 인프라의 메모리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에 공급 과잉 우려는 없다”고 분석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삼성은 현재 자사 이익을 축소시키면서까지 물량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표. 삼성전자 반도체 시설투자 추이(단위 10억달러, 자료 IC인사이츠)
2010년 10.9
2011년 11.7
2012년 12.3
2013년 11.6
2014년 13.5
2015년 13
2016년 11.3
2017년 26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