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30년간 211배 성장 신화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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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1월. `처녀수출`이란 제목의 짤막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내용은 “한국에서 생산된 전자계산기용 트랜지스터가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된다”였다. 약 1년 전인 1965년 12월 3일. 미국 반도체 업체 코미는 7만6000달러를 투자해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를 조립·생산하는 고미전자산업을 한국 땅에 세웠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좋았고, 대만이나 홍콩과 비교해 교육 수준이 높았다. 반면에 임금 수준은 낮았다. 이 같은 장점을 확인한 미국 기업은 한국 진출을 서둘렀다. 코미를 시작으로 페어차일드, 시그네틱스, 모토로라, IBM 등이 한국에 공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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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중화학공업이었다. 전자공학과는 서울대 한 곳에만 있었다. 반도체 산업을 관장하는 정부 조직도 없었다. 상공부 산하 전기과에 전자 담당 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

반도체 산업의 씨앗을 뿌린 후 반세기가 흘렀다.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 수출 1위 품목 부동의 1위는 반도체가 자리 잡았다. 1977년 2억9800만달러에 불과하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629억3900만달러를 기록했다. 30년 만에 무려 211배 성장했다. 세계 산업사에서 진기록이 세워졌다. `변방` 대한민국은 반도체 초강국 미국 추월을 눈앞에 뒀다.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말할 수 없는 아픔도 있었다. 지금 대기업 부회장이나 사장 자리에 올라 있는 이들과 현장을 떠난 산업계, 학계 반도체 1세대는 미국과 일본에서 `산업스파이` 취급을 받았다. 그들이 선진 기술을 이 땅에 심었다. 1980년대 중반,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기업으로 올라서려 하던 때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는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다. 그해 삼성의 영업이익 80%를 배상금으로 가져간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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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은 다시 위기다. 외부보다 내부로부터의 위기다.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이끌었지만 `죽음의 산업`으로 호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단체의 왜곡된 주장이 득세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정부와 정책 입안자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국가 반도체 연구개발(R&D) 투자 예산은 단칼에 삭감됐다. 이웃나라 중국이 이틈을 타고 `반도체 굴기`를 외친다. 천문학 규모의 예산을 서슴없이 투자한다. 50년 도전과 영광의 역사가 저물 위기에 놓였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가 현재고 현재가 미래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불모지에서 일궈 낸 반도체 강국의 신화를 지속할 국민적 관심과 전략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자신문은 `한국 반도체 50년` 시리즈를 연재한다. 위기를 극복한 불굴의 도전정신에서 반도체 초강국의 미래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반도체 역사 산증인의 제보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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