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의 펀한 기술경영] <9> 이어달리기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수를 세는 단위다. 억은 10의 8승, 조는 10의 12승, 경은 10의 16승이다. 재작년 우리나라 GDP는 1540조원, 미국은 1경9000조원이다. 경을 넘는 단위는 실제로 별 쓸모가 없다. 하여튼 계속 10의 4승씩을 곱해 보자. 10의 20승, 10의 24승, 10의 28승. 이윽고 10의 100승에 이른다. 풀어쓰면 1 다음에 0을 백번 붙여야 한다. 이 단위는 구골(googol)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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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귀에 익은 단어다. 실상 구글(Google)은 구골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세상에 나왔다. 시가총액 5220억달러짜리 기업의 탄생치곤 익살스럽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누구 실수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스탠퍼드대 컴퓨터사이언스 박사과정생이 실수할 정도라면 흔한 단어는 아닌 모양이다. 자신의 검색엔진이 무한한 양의 정보를 다루고 제공하기 바랐던 탓에 선택된 이름. 구글은 서버의 도메인 조차 `1e100.net`이라고 붙인다. 1 다음에 0이 백 개라는 뜻.

흥미롭게도 바둑은 10의 170승 세계를 다룬다. 이에 달하는 경우의 수가 있다니 무한대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런 점에서 구글과 바둑은 태생부터 통한다고 해야 할까. 구글이 바둑보다 적어도 2500년 어리지만 말이다.

구글은 올 1월 자신의 블로그에 바둑을 소개하며 “바둑은 직관과 직감의 게임으로 그 아름다움과 절묘함 그리고 지적 깊이로 수 세기에 걸쳐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왔다”고 했다. 그러니 기계가 범접 못할 보루가 침범 당했다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1997년 경우의 수가 10의 120승이라는 체스가 넘어갔을 때 어느 정도 예상된 일 아닌가.

어찌 보면 실망할 일도, 더욱이 갑작스레 찾아온 일도 아니다. 예견이라도 했을까. 2015년 7월 토머스 데번포트 미국 밥슨대학 교수와 줄리아 컬비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에디터는 `자동화를 넘어서(Beyond Automation)`란 기고문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유메이 허트라는 여성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이 어떻게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지 걱정됩니다.” 저자들은 과거 오토메이션이 블루칼라 걱정거리였다면 인공지능은 지식전문가의 짐이 될 것이라고 쓴다. 자동화에는 세 시대가 있었다. 19세기에 더럽고 위험한 일을 넘겼고, 20세기에는 단순한 반복작업을 넘겼다. 하지만 이제는 의사결정이라는 것을 넘기려 한다.

두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을 달리한다. 인공지능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보자 한다. 인공지능을 창의적 문제 풀기 파트너로 만들 수는 없을지 되묻는다.

다섯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스텝업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 T자형 지식을 축적하라, 깊지만 넓게 생각하라 한다. 두 번째는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활용하기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팀과 팀 간 관계에서 어떻게 협력할지 생각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시간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들여다보기다. 컴퓨터에게 일을 넘기기는 하되 처리 과정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2014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에피소드를 한 가지 든다. 어떤 사람이 은행에 차환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다. 이유는 최근 바뀐 새 직업이 예전에 비해 수입이 불규칙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당사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던 벤 버냉키였다. 대출심사 프로그램은 버냉키가 누구인지 알 리 없었다. 막 의장직을 사퇴했다. 대신 고액의 저서 계약과 특강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넷째는 `암묵적 지식을 활용하라`이다. 모든 지식이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숫자나 문서로 만들기 어려운 지식과 경험 중에 가치 있는 것이 있다. 인공지능은 당신의 암묵적 지식을 증강(augment)시키기는 쉽지만 대체하기는 힘들다.

다섯째는 이해하기다. 그것이 자동화가 되었던 인공지능이 되었던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한 발짝 다가서 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방법으로 인간 능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가서면 인간 대 기계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 관계가 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세돌과 알파고 얘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오그멘팅(증강)을 통해 기계와의 경주가 서로 돌진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달리기가 되게 할 수 있다. 누군가 컴퓨터와 바통을 매끄럽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는 승자가 될 것이다.` 이것을 증강이라 부르든 활용이라 하든 우리 회사에, 업무에 어떻게 접목해 볼지, 과제는 없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높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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