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은 갈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러다가도 사촌이 궁지에 몰리면 잠을 못 이룬다. 요즘 위기에 빠진 애플을 보는 심정이 꼭 그렇다.
‘애플 한계론’이 현실로 다가왔다. 잘나가던 아이폰이 진원지다. 2007년부터 휘몰아친 파죽지세가 꺾였다. 판매량은 지난해 2억3120만대로 정점을 찍었다. 올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아이폰 판매 실적을 2억1800만대로 전망했다. 지난해 대비 5.7% 급락한 수치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에 중국 저가폰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애플도 수요 절벽 앞에 어쩔 수가 없다.
아이폰 판매 저조는 애플에 큰 타격이다. 총 매출액 가운데 60%가 아이폰에서 나온다. 아이폰이 무너지면 브랜드파워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 주가는 벌써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의 130달러에서 이젠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고점 대비 23%가량 내려갔다.
최근엔 아이폰 잠금장치 해제를 놓고 미국 정부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장치를 풀라는 법원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공권력에 맞서는 모습에 여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애플을 보는 느낌이 묘하다. 우선 통쾌하다. 자기 잘난 척만 하던 모범생이 어느 날 시험을 망친 꼴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무엇보다 애플은 한국에서 실속만 챙기던 기업이다. 고압적이기까지 했다. 소비자든 통신사든 부품 공급사든 애플의 콧대는 높았다. 엉망인 사후서비스도 끝까지 버티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조치가 나온 뒤에야 고쳤을 정도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 배상금 6700억원까지 챙겨 갔다. 그런 얄미운 녀석의 불행. 이보다 후련한 것이 있으랴.
그런데 걱정이다. 애플의 묵직한 존재감 때문이다. 애플이 한국에서 돈만 벌어 갔지 기여한 것이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겉으로 볼 땐 그렇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다르다.
아이폰은 한국의 부품산업을 떠받치는 한 기둥이다. 삼성그룹 최대 고객이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부품을 구매한다. 아이폰 핵심 칩은 거의 삼성전자에서 생산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멀지 않아 애플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공급할 예정이다. LG그룹 부품사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기업은 애플 매출이 없으면 주가가 떨어진다. 그 아래로 내려오면 애플 덕에 먹고 사는 장비, 소재 기업도 수두룩하다. 더러는 애플과 거래하는 일본, 중국, 대만의 제조 기업에 장비를 공급하기도 한다. 애플이 망한다는 것은 스마트폰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도 애플이 건재한 편이 낫다. 중국 저가폰에 맞서 프리미엄 테마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갤럭시’나 ‘아이폰’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프리미엄폰 시장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 순망치한이다. 세기의 특허소송 덕분에 갤럭시와 아이폰이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일화를 되새겨볼 만하다. 치열한 라이벌이 있어야 혁신 엔진도 제대로 작동한다.
삼성전자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6에서 가상현실(VR)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제 애플로 공이 넘어 왔다. 혁신을 기대한다. 세계 스마트폰 산업의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혁신을 멈춰선 안 된다. 애플도 힘내라.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