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이 유가하락 여파로 6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부진의 골이 깊어지면서 연내 회복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수출은 393억달러로 2011년 2월 이후 4년 6개월 만에 400억달러를 밑돌았다. 작년 대비 감소율은 14.7%로 2009년 8월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수출은 1월부터 8월까지 여덟 달째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 5월 11%까지 떨어진 감소율이 6~7월 2~3%대로 다소 둔화되는 듯했지만 8월 다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수출 부진 원인은 저유가와 공급과잉으로 인한 제품단가 하락이다. 유가는 1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석유·석유화학제품 수출이 유가하락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제품 8월 수출액은 작년 대비 30억달러 감소했다. 저유가로 인해 11억달러 규모 해양플랜트 수출 일정이 연기됐다.
전체 수출 단가도 지난해 대비 18% 낮아졌다. 이 때문에 8월 수출은 물량 기준으로는 3.8% 늘었지만 금액상으로는 크게 줄었다.
악재가 더해졌다. 지난달 중국 톈진항 폭발 사고로 우회 통관경로를 찾는 과정에서 1억달러 규모 수출이 지연됐다.
그나마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버팀목 역할을 했다. 우리 수출 1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작년 대비 4.7% 증가했다. 올해 들어 등락을 반복하던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신제품 출시 효과에 힘입어 지난달 20% 가까이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베트남 수출이 30%가량 급증했을 뿐 중국·일본·미국·EU 수출 모두 부진했다.
정부는 지난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단기, 중장기 수출 대책을 내놓았다. 무역보험에서 제조업 투자 확대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수출 실적만 놓고 보면 정책 효과를 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수출 회복은 기저효과가 나타나는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는 4분기 수출 감소세가 둔화되는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목표했던 4년 연속 무역 1조달러 달성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수입 역시 올해 들어 수출과 동반 하락세다. 8월 수입은 350억달러로 작년 대비 18.3% 급감했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한 덕에 43개월 연속 무역흑자 행진을 이어갔지만 내용상으로는 좋지 않다. ‘불황형 흑자’다. 윤갑석 산업부 무역정책관은 “긍정·부정 요인이 혼재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무역 1조달러 달성 여부를 언급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당분간 유가가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적은 만큼 유가하락 여파가 적은 품목에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무선통신기기 등 기존 주력제품을 비롯해 최근 수출이 늘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신규 수출 상품 육성이 요구된다.
연말 미국 금리인상 여부는 또 다른 변수다. 미국이 관측대로 금리를 올리면 환율 측면에서는 우리 수출에 긍정적이다. 반대로 신흥국 경기가 주춤해 우리 수출 기회가 줄어들 위험도 있다.
[표] 주요 품목 수출 증감률 추이 (단위:%)
자료:산업통상자원부(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