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단어조차 생소해진 ‘등사기’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구석 ‘인쇄실’에서 시험지를 롤러로 찍어내던 초기형 인쇄기기다.
한솔 교세라 도큐먼트 솔루션스 코리아 사장은 ‘복사기’ ‘복합기’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마저 내리기 어려웠던 시절 인쇄시장에 뛰어들었다.
“30여년 전 복사기는 지금의 핀테크처럼 유망한 IT 산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누구나 복합기라는 이름으로 인쇄기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당시만 해도 복사하는 기계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한 사장은 2013년 5월 교세라 한국법인 대표를 맡아 1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다. 교세라가 2009년 한국시장에 뛰어든 후 닦아온 기반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의 목표는 올해를 한국사업 흑자 원년으로 삼는 것이다.
한국시장 안착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신도리코, 한국후지제록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CKBS) 선발주자의 3강 체제가 확고했고 삼성전자가 복합기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경쟁 환경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당장 ‘교세라’ 브랜드를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
“교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했습니다. 영업을 하더라도 ‘교세라가 뭐하는 회사냐’는 질문에 답하기 바빴습니다. 우선 이름을 알리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2011년 시작한 사업 중 하나가 프로야구단 ‘넥센 히어로즈’ 후원이다. 기업 후원으로 구단 운영을 충당하는 넥센은 교세라의 후원이 필요했고 교세라는 국민스포츠를 통한 기업 알리기를 기대했다.
한 사장은 “히어로즈가 성적을 잘 내줘서 교세라도 기분이 좋다”고 후원에 대한 만족을 표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히어로즈 선수단이 직접 사인한 야구배트가 놓여있었다.
이를 발판삼아 그는 ‘불철주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경영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포화된 한국시장에 140여 임직원과 안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닦는다. 최근 전사적으로 도입한 ‘선조치 후보고’가 대표적이다.
“경영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현장을 다녀보니 회사 내부 규칙 때문에 고객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더군요. 적어도 회사 때문에 고객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선조치 후보고’를 정착시키고자 노력 중입니다.”
한 사장은 복합기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복합기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복합기로 먹고사는 회사의 수장으로서 파격적인 말이다. 과거 복사기, 프린터, 스캐너, 팩스 등을 단품으로 팔던 게 복합기로 융합된 사례는 있지만 이 모든 것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래는 융합시대입니다. 누가, 가장 먼저 IT 기반으로 시장을 열어 가는지가 승부처입니다. 종이에 평면인쇄가 전부인줄 알았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 세상은 물건을 통째로 찍어내는 3D프린터의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과 새로운 변화를 가장 먼저 선보이는 기업이 살아남을 겁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