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 중 만난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케이블TV 업계가 최근 지상파 방송 3사와 가입자당 재송신료(CPS)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제안한 ‘공동협의체’ 이야기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CPS 산출 기준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유료방송 업계가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격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파는 사람이 매기는 것이지, 사는 사람이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실제로 자유 경쟁 시장 체재는 우선 판매자가 물건 가격을 정하고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이 가격을 조정한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콘텐츠가 자유 경쟁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국내 방송 시장에서 유통되는 전체 방송 콘텐츠 가운데 80% 이상을 지상파 방송사가 생산한다. 수많은 판매자가 진입한 일반 재화 시장과 달리 한 생산 집단에 ‘판매품’이 몰려 있어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지상파 3사가 함께 CPS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장처럼 사업자 간 경쟁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CPS는 ‘보이지 않은 손’이 작동하지 않는 특수 시장인 셈이다.
케이블TV에 이어 IPTV 사업자도 재전송료 갈등에 다시 봉착했다. 지상파의 일방적인 가격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해묵은 반박이 재연됐다. 또 소비자만 방송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합리적인 협상체계를 마련해볼 때가 됐다. 시장에 의해 가격이 조정되지 않는 구조라면 유료방송과 지상파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소비자 집단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사정 협의회’를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두루뭉술한 CPS 금액 산정도 3자가 객관적인 데이터로 합의하면 논란이 줄어들 수 있다. 스마트 방송시대에 갈 곳 먼 방송업계가 더 이상 재전송료 갈등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질곡에서 벗어날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보통신방송부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