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 보는 통신역사] <57>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대결 10주년, 깨달음은 자신의 몫

Photo Image
2017년 7월 SK의 인간을 위한 AI 공헌 선언 광고(왼쪽).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왼쪽부터 최재유 DIF 공동의장, 이세돌, 필자, 김정기 KAIT 상근 부회장
Photo Image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9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개최한 제13차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DIF)'에서는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바둑 대결을 치른 이세돌 9단이 강연했다. 대국 이래 10년이 지난 시점이어서 의미가 크다. 인간이 인공지능(AI)과 싸워 1승을 끌어낸 처음이자 마지막 시합이었다. 다섯 번에 걸친 대국에서 승리의 결정타는 정수(正手)가 아니었다. 인간 승리 4국에서 이세돌은 불리한 국면을 타개코자 68수의 판 흔들기 시작으로 78수에서 흑의 견고한 중앙 성곽에 균열을 내며 연결 고리를 약화했다. 2국에서는 알파고가 우변 집을 양보하고 너무 멀고 엷은 37수를 두자 다들 의아해했지만, 중앙을 확장하면서 흑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기사는 스승으로부터 사사 받고 기보(棋譜)로 연구하고 시합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바둑을 익힌다. 고수란 상대와의 수작(酬酌)이 전개될 앞으로의 흐름을 대역적으로 관망하며 바둑을 둔다. 몇 수의 국지적 상황밖에 알 수 없는 일반인에게는 의도가 읽힐 수 없다. 고수라도 시합에서의 주도권은 상대나 진행 과정에 따라 다르기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창의적이라 불린 78·37수도 결국은 어느 한쪽이 대역적 흐름을 꿰고 최적의 수를 놓은 것이다.

알파고의 패인은 경우의 수가 줄어들수록 완벽해지는 알고리즘의 속성을 간파한 이세돌이 승부를 뒤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용병술 대결이라기보다는 승리를 위해 바둑 알까기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고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피나는 노력, 시행착오와 좌절, 대국의 서사 따위는 알 도리 없는 알파고의 수는 전기를 동력으로 한 연산 결과물이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로봇의 붓질이 끝나고 나니 떡 하니 그림이 그려진 것과 흡사하다.

이젠 AI로 바둑 시합을 해설하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의 바둑 대전은 콘솔로 누가 더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고기능 GPU를 장착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질지도 모르겠다. 더는 아날로그 시절에 등장했던 고수들은 보이지 않고 정답만 암기한 하수만 득실거리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활자가 등장하자 책 필사가 사라지면서 학습 효과가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상황과 흡사하다. 인간은 당장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조차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의 동물이다. 출판문화로 평균 지식수준은 올라갔고 정보량도 늘어났지만, 제대로 내용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바둑에서 복기(復碁)가 중요한 것은 대국 내용을 재현함으로써 스스로 원리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자로 책 한 권을 옮기던 시간을 아낀 만큼, 이제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요약해줘 시간을 절약해준 만큼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한 여유가 필요하다. AI는 답을 빠르게 제공하지만, 깨달음은 여전히 본인의 몫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