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스마트 센서 등 고성능 인쇄전자기기를 양산할 수 있는 10나노급 초미세 나노 인쇄기술을 개발했다. 이론상 팔만대장경을 A4 용지 한 장에 축소 인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정연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팀은 박재홍 나노종합기술원 박사, 이승용 KAIST 박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물리적 한계로 여겨졌던 ‘10나노급 나노구조체를 인쇄해 원하는 물질에 전사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10나노미터(nm)는 1억분의 1m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만 분의 일에 해당한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복잡한 제조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고밀도·고성능 센서 등 첨단 기기를 빠르고 간단한 방법으로 대량 양산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모두 펼치면 축구장 넓이에 해당하는 팔만대장경도 A4용지 한 장에 축소 인쇄할 수 있다.
나노 인쇄·전사 기술은 통상 인쇄기판 역할을 하는 탄성 몰드에서 나노구조체를 찍어내고, 찍어낸 나노구조체를 실리콘 기판이나 유연소재 등 원하는 물질에 옮기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나노구조체와 탄성 몰드간 접착력 등의 문제로 나노 인쇄기술은 수백 나노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10나노급 미세 인쇄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기존 탄성 몰드와 달리 표면에너지가 높은 고분자를 탄성 몰드로 사용하면 미세 인쇄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10nm 이하 초미세 나노구조체를 인쇄하는데 성공했다. 또 탄성 몰드 표면 접착력을 선택적으로 약화시켜 전사하는 원리를 고안하고, 거의 모든 물질 표면에 나노구조체를 전사할 수 있는 인쇄 기술을 구현했다.
연구팀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10나노급 나노구조체를 인쇄해 실리콘 웨이퍼 기판뿐만 아니라 사람 피부에 전사했다. 나아가 폭발성 가스를 빠르게 감지하는 고성능 가스 센서를 제조했고, 과일표면에 존재하는 극미량의 잔류 농약을 비파괴적으로 빠르게 검출하는 센서도 제작했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몇 시간이 걸리는 잔류농약 검출시간을 수초 이내에 즉시 탐지하는 기술을 실용화할 예정이다.
정연식 교수는 “이번 기술은 10년 후 세계적으로 약 100조원의 시장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인쇄·유기·유연 전자기기 제조를 위한 원천기술”이라며 “향후 유연 전자소자, 저전력·고성능 디스플레이, 극미량 물질 탐지, 고효율 촉매 등의 제조에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