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86>노무현 정부 출범

정권이 임무 교대를 했다. 2003년 2월 25일. ‘국민 주인정치’와 ‘개혁과 통합’을 기치로 내건 노무현정부가 출범했다.

이날 오전 9시 50분. 서울 종로구 명륜동 노무현 대통령 사저.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아, 그래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내정된 서갑원(17·18대 국회의원 역임)이 노 대통령에게 출발시간을 보고했다. 거실 TV에서는 사저 앞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검정색 코트차림의 노 대통령이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서울 명륜동 사저를 나섰다.

사저 주변은 몰려든 취재기자들과 방송사 카메라, 환영 나온 인근 주민들로 초만원이었다. 노 대통령은 환한 표정으로 이웃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는 즉석 인사말을 통해 “6년 전 이 집에 이사온 뒤 15대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해수부 장관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며 “국민과 함께 따뜻하고 밝은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언제 한 번 청와대로 초청하겠다”고 말하자 주민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 대통령 내외는 대기 중이던 대통령 전용 승용차에 올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노 대통령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적었다.

16대 대통령 취임식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새로운 대한민국-하나로 된 국민이 만듭니다’라는 주제로 각계인사 4만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국민대표 8명의 손을 잡고 취임식장에 입장했다.

국민대표 8명은 10대부터 50대로 아름답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과 이웃의 삶을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 중에서 선정했다.

컴퓨터 백신 전문가 안철수 대표(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장경숙 평택푸드팽크 소장(현 소장), 최일도 목사(현 다일공동체 대표), 민부기(부산 금정전자공고 1년), 권혜숙(주부). 이지은(초등학생) 모녀, 여군 조종사 박지연(현 공군 1전투비행단 소령), 오규민(당시 군인) 등이었다.

노 대통령은 11시 10분 오른손을 들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는 선서를 했다.

선서 직후 21발의 예포가 파란 하늘로 울려 퍼졌다. 기수단과 의장대, 군악대, 취타대 등 200여명이 축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어 김영환, 김남두, 최승원, 박세원 등 국내 정상급 테너 4명이 축가로 ‘오 솔레미오’ ‘희망의 나라로’를 불렀다.

노 대통령은 다시 연단으로 나가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27분에 걸쳐 낭독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 역사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으나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반세기 만에 세계 열두 번째의 경제강국을 건설했다”며 “농경 시대와 산업화를 거쳐 지식정보화 시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했으며 고급 두뇌와 창의력, 세계 일류의 정보화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부단히 혁신해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이루겠다”면서 “지식정보화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신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하며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한다”며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들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연설에 이어 소프라노와 테너 7명, 안숙선 명창(현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등이 창작곡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불렀다.

11시 52분경.

취임식이 끝나자 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단상에서 악수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이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단상 아래로 내려가 환송했다.

노 대통령은 12시 7분경 권력의 산실인 청와대로 출발했다. 청와대 앞길에는 효자동 주민 100여명이 나와 청와대 새 주인을 환영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에게 꽃다발과 성냥, 양초 등을 집들이 선물로 전달했다.

12시 20분경 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문희상 비서실장(국회부의장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유인태 정무수석(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건 국무총리 지명자(대통령 권한대행 역임, 현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에 대한 임명동의 요청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첫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문 비서실장과 이정우 정책실장(현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문재인 민정수석(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주일대사, 우석대 총장 역임),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현 서울대 교수) 등 차관급 12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임명장을 받으면서 깍듯이 인사하는 문 실장에게 “너무 고개 많이 숙이지 않아도 됩니다. 선거 때도 아닌데…”라고 농담을 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들에게 “축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등의 말을 한 뒤 이들과 선 채로 각각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태유 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회고.

“나는 노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과 교류나 인연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변 인사들이 국민인터넷추천제에 나를 과기, 산자, 정통부 장관으로 추천했고 이를 본 노 당선인 측이 보좌관으로 낙점한 것으로 압니다. 내가 학위는 경제학이지만 에너지, 과학기술 등을 두루 공부한 게 보좌관 발탁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임명되기 전 당선자 면접을 위해 서울 시내 안가(安家)에서 문희상 비서실장과 면담했다.

김 전 보좌관은 당시 공직 임명 절차를 잘 몰라 “학교 휴직은 안 되고 교수와 겸직은 가능하다”고 했더니 문 실장이 “휴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문 실장 면담 후 노 당선인을 만났다. 노 당선인은 “잘 부탁한다”며 김 전 보좌관에게 악수를 청했다. 노 당선인 일정이 바빠 긴 대화는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김 전 보좌관은 기억했다.

노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에서 초밥으로 점심을 15분 만에 간단하게 끝낸 후 곧장 취임축하차 방한한 외국 정상들과 잇따라 회담을 했다.

대통령 취임식 준비는 1월 14일 임채정 인수위원장(국회의장 역임)을 위원장으로 하는 취임식 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시작했다. 위원은 인수위 각 분과 간사들로 구성했다.

준비위원회는 1월 2일 행정실 안에 윤훈렬 전문위원(청와대 비서실 국장 역임, 현 동국대 겸임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을 팀장으로 준비팀을 구성, 사전 활동에 착수했다.

윤훈렬 당시 실무팀장의 증언.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슬로건과 참여정부라고 하는 개념을 어떻게 잘 녹여낼지, 권위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타파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인수위는 1월 9일 취임식 준비 실무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한길 당선자 기획특보(문화관광부 장관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위원장을 맡아 업무를 총괄 지휘했다.

실무위원으로는 인수위 이병완 기획조정분과 간사(청와대 비서실장 역임), 이종오 국민참여센터 본부장(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역임), 정순균 대변인(국정홍보처장 역임), 정만호 행정실장(청와대 의전비서관 역임)과 당선인 비서실의 이광재 기획팀장(강원도지사 역임), 윤태영 공보팀장(청와대 대변인 역임)이 간사 겸 실무준비팀장에는 윤훈렬 준비팀장이 임명됐다.

취임식장은 국회 본관 앞 광장, 서울시청 앞, 청와대 대정원, 경복궁 내 광장, 광화문 앞 세종로광장,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등을 놓고 검토했다. 하지만 노 당선인이 그간의 선례와 ‘민의의 전당’임을 감안해 국회 본관 앞으로 장소를 결정했다.

실무위는 취임식 준비에 인터넷을 적극 이용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국민 아이디어를 공모해 총 2015건을 접수하고 이 중 1000여건의 의견은 취임식 행사에 반영했다. 자원봉사 조직인 희망봉사단 200명도 인터넷에서 모집했다.

참석자도 전체 4만5000명 중 인터넷 신청자 가운데 컴퓨터 추첨을 거쳐 2만명을 선정, 이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대통령 취임사는 1월 15일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명관 한림대 교수(KBS 이사장 역임)를 위원장으로 이낙연 당선인 대변인(현 전남도지사), 김종심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저작권심의조정위원장 역임), 소설가 김주영(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성경륭 한림대 교수(청와대 정책실장 역임), 이정우 교수, 임혁백 고려대 교수(IT정치연구회장 역임),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청와대 홍보수석 역임)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간사는 윤태영 당선인 비서실 공보팀장이 맡았다. 취임사 초안은 김종심, 조기숙, 김호기 위원이 작성했다.

이들은 1월 20일 노 당선인과 만나 취임사의 골격과 방향을 잡고 2월 17일까지 8차례 전체회의를 열어 초안을 가다듬었다. 2월 21일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최종안을 확정했다.

이낙연 당시 당선인 대변인의 회고.

“노 당선인은 이정우 교수를 통해 자신이 꼭 넣고 싶은 내용을 전하곤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원고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내게 원고를 주면서 ‘어떻냐’고 하셨어요. ‘좀 딱딱합니다’라며 나름의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이 의원이 취임사를 최종 정리하세요’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더니 끝까지 하라고 하셨어요. 서울 롯데호텔에 방을 잡고 김한길 위원장. 윤태영 간사와 같이 정리를 했습니다. 내가 대표집필을 한 건 아니고 정리정돈만 했죠.”

노 대통령의 취임 첫날 일정은 밤 9시가 넘어 끝났다. 경축만찬까지 13개의 공식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이었다. 관저로 돌아온 노 대통령은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5년간 살 관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청와대 첫날 밤, 노 대통령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수많은 상념(想念)이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 권력 역사를 장식할 대통령이었다.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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