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건축물에서 채광과 통풍만의 기능을 수행하던 창문은 유리가 소재로 사용되면서 또 다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중세시대인 10세기 이후 서구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보듯 창문은 회화처럼 성화를 보여주는 표현의 매체가 되었다. 근대 이후 유리가 창문의 보편적 소재로 사용되면서 투명한 창문은 밖을 내다보고 또 쇼윈도처럼 안을 들여다보는 시각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실제 세계인 풍경을 보거나 성화처럼 가상의 세계를 본다. 회화,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사실주의 회화는 그림 속의 세계를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창문이다.
15세기 건축가이자 화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비롯한 사실주의 화가들은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듯 사실주의 회화가 창문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알베르티는 회화를 창문이라 간주했고, 오늘날에도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가상의 창문을 ‘알베르티의 창문’이라고 부른다.
사실주의 회화가 실제 창문처럼 기능하기 위해서는 원근법과 같은 특수한 기법들이 필요하다. 원근법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기법이다. 특히 선형 원근법은 관찰자 즉, 화가의 위치에서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려낸다. 이 비율을 정확하게 계산해 그려낼수록 더 사실적인 그림이 된다.
이를 위해 초창기 사실주의 화가들은 실제 창문을 활용했다. 창문의 상하 좌우로 실을 매거나 유리 창문 위에 선을 그어 격자를 만들고, 똑같이 격자가 그려진 종이 위에 창문의 격자별로 사물을 모사하듯 그대로 그려냈던 것이다. 이것은 공간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내는 것이다. 묘사되는 사물의 크기는 사물과 화가 사이에 있는 창문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적인 창문은 성화나 풍경과 같은 이미지 세계만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1960년대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스탠포드연구소는 데이터의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을 구상했다. 이 창문을 통해 컴퓨터 이용자는 데이터를 입력하고 컴퓨터가 처리한 결과를 본다. 이것이 바로 은유적으로 ‘윈도우’라 부르는 컴퓨터 인터페이스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애플의 맥OS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윈도 시스템은 1970년대 말 제록스사의 팔로알토연구소(PARC)가 처음으로 구현해 냈다. 앨런 케이 등 젊은 컴퓨터 과학자들은 창문을 통해 여러 작업을 각기 다르게 처리할 수 있는 다중 윈도우 시스템을 고안했고 여러 창문들을 중첩도 시킬 수 있도록 구현해 스크린의 절대적 크기라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그 이후의 발전은 앨런 케이 등이 구현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다중 윈도우즈, 즉 창문들을 통해 각기 다른 세계를 본다. 워드 프로세서 창은 문서의 세계를, 미디어 플레이어 창은 사진, 동영상, 음악의 세계를, 웹 브라우저는 정보의 세계를 보여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각기 다른 세계를 그것만의 창문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주의 회화를 보며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우리는 애플리케이션의 창문을 통해 그 세계에 몰입한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든 회화든 창문은 세계를 보는 것을 넘어 그 세계에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우리는 각기 다른 회화를 보며 이 세계, 저 세계에 빠져들 듯 컴퓨터 윈도우를 통해 이 세계, 저 세계를 넘나든다.
이렇듯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가상적으로 구현해준다는 점에서 알베르티의 창문과 컴퓨터 윈도우는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