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광물·전략물자·희토류 독점화 현상 심화…첨단 산업 원자재 확보 전략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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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디스플레이·부품 등 우리나라 대표 제조업이 사용하는 소재 원재료 가운데 분쟁광물, 전략물자, 희토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특정 광물의 독점 현상이 심각해져 자원 종속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기업별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자원 확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헬륨 가스 공급 가격이 인상됐다. 시장 침체 상황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헬륨 가스는 미국 프락시에어가 거의 독점하고 있어 정반대 현장이 빚어지고 있다.

헬륨 가스는 온도를 낮추는 냉매로 주로 사용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처럼 고온·저온을 오가는 첨단 설비를 갖춘 공장에는 필수 소재다. 전 세계 매장량 대부분은 미국·중국에 묻혀 있지만 이들 국가는 자원 고갈을 우려해 공급량을 통제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구리·탄탈룸·텅스텐·저마늄·주석 역시 분쟁광물로 지정돼 독점 시장으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탄탈룸은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으로 분쟁광물이 되면서 독일 HC스타크 독점 공급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앙처리장치(CPU)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로직 반도체는 특히 메탈 배선을 알루미늄이 아닌 구리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다. 구리를 반도체 회로에 적용하려면 전자의 이동을 적절하게 차단해주는 탄탈룸이 필수적으로 쓰인다.

텅스텐을 함유한 광물인 울프러마이트(Wolframite) 역시 분쟁 광물이다. 텅스텐은 메모리 반도체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금속 소재다. 아직 독점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과 주변국(아프리카 9개국)에서 채굴된 주석, 텅스텐, 금 등도 미국 의회에서 분쟁광물로 지정됐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코발트, 차세대 경량화 및 인체무해성 소재로 불리는 타이타늄은 희소금속에 속한다. 세리야 화학적기계연마(CMP) 주요 소재인 산화세륨은 시스템반도체에서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에 전 세계 매장량의 약 90%가 몰려 있다.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가와 독점 기업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시장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딱히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독점 자원에 대해 협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유엔안보리결의 1540 발표에 따라 전략물자관리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관은 각국 전략물자에 관한 정보 제공, 전략물자 규제만 담당할 뿐이다. 국내 부존 전략물자를 수입·가공하고 제품에 응용하는 생태계를 지원하는 역할은 없다.

분쟁광물에 대한 대응 역시 제한적이다. 미국이 오는 5월부터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쟁광물 사용 여부를 의무 보고하도록 한 이후 국내 업계는 기업별로 분쟁광물로 지정된 국가에서 도입된 광물을 구매하지 않도록 정한 게 전부다.

중국·일본 정부가 아프리카 등에 공적개발원조(ODA)를 적극 추진하거나 종합상사 등을 지난 20~30년 전부터 진출시킨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례로 일본 다나카귀금속은 남아프리카 등지에 광산을 발굴해 이리듐·팔라듐 등 희토류 금속을 직접 채굴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뒤늦게 ODA 시장에 뛰어든 한국은 지난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내 개발원조위원회(DAC) 23개 회원국 중 17위에 불과하다.

소재 업계 관계자는 “점점 한국 완제품·부품·소재 기업이 불리해지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전 산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