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위치한 디자인벤처 롤리(ROLI)의 롤랑드 램 대표는 독특한 사람이다. 일찍부터 동양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연구를 위해 머리를 삭발하기도 했다. 철학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향한 그의 열정은 4년 전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재학 중에 고안한 신개념 전자피아노 `시보드(Seaboard)` 개발로 이어졌다.
롤랑드 대표는 “사람들의 생각을 컴퓨터를 통해 전달하는 수단은 키보드, 마우스, 터치스크린 순서로 발전해왔다”며 “새로운 사용자환경(UI) 개발을 통해 사람들이 더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피아노연주자였던 그가 프로토타입을 고안하며 기술에 디자인 접목을 주도했다.
시보드는 사용자가 마치 고무같은 키보드에 어떻게 압력을 주느냐에 따라 바이올린이나 기타처럼 연주가 가능하다. 신디사이저와 유사해 보이지만, 사용방법은 훨씬 직관적이다. 롤리는 시보드에 적용한 독특한 센싱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전자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롤리가 개발한 것은 전자피아노가 아니라 결국 `SEA`라는 새로운 UI 디자인이었다. 감각적이고 탄력적이며, 다양한 적용성이 특징이다. 사실상 UI와 센싱 기술이라는 무형의 지식재산(IP)이 롤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컴퓨팅, 게이밍, 3D 디자인, 기계, 로봇, 의료산업까지 다양한 산업과 접목을 내다봤다.
롤랑드 대표는 “음악은 시작일 뿐이다”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피지컬 테크놀로지를 융합하는 게 나의 관심”이라고 말했다. 회사에는 디자이너만이 아니라 전자, 사운드, 소재, 바이오센싱 기술을 연구하는 다양한 인재들이 모였다.
시보드는 롤리의 첫 번째 제품이다. 지난달 그랜드피아노의 건반 개수에 착안해 88개만 한정 발매한 플래그십 모델은 사전예약에만 수천 명이 몰렸다. 헐리웃의 유명 영화음악가도 구입을 위해 줄을 섰다. 조만간 일반인을 위한 제품을 출시하는 데, 롤리는 하이테크 전자제품의 제조기지로 한국을 낙점했다. 롤리의 디자인 프로덕션을 총괄하는 엄홍렬 책임이 한국과 영국의 혁신 제품 제조를 총괄하는 주요 임무를 맡았다. 디자인-엔지니어링 전문과정인 RCA-IDE를 마친 그는 지난해 런던올림픽 시상대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엄홍렬 책임은 “한국은 숙련된 노하우를 가진 제조 기업이 많고, 이는 영국에 비해 강점”이라며 “세밀한 완성도 면에서도 중국과 비교 우위를 가지는 만큼 하이테크산업 위주로 육성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런던(영국)=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