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 그가 자신의 청바지 앞주머니에서 새로운 아이폰을 꺼낼 때 세상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가 얇은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낼 때 세상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대 위에 선 그는 마법사였고, IT업계의 영웅이었다. 시장은 요동쳤다. 마른 들판에 불 번지듯 애플 광팬은 기하급수로 늘었다. 그들은 애플발(發) 혁신 제품을 세계에 전파하는 전도사 역을 자처했다.
애플이 첫 스마트폰을 선보였을 때 많은 이가 비웃었다.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이미 선점한 휴대폰 시장에서 아마추어가 살아남는 건 불가능 그 자체였다. 그것도 폐쇄적인 운용체계(OS) iOS를 고집하니 더욱 그랬다. 컴퓨터 사업에서 폐쇄적 OS로 참패한 경험이 있는 애플이니 주변의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무모함 그 자체였다.
무모함이 혁신으로 판명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세대 통신기술을 탑재한 아이폰은 휴대폰 시장의 거대 흐름을 삽시간에 바꿔놓았다. 그 때 휴대폰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스마트폰과 피처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이폰과 아이폰이 아닌 것.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어떤 모임이던 무릇 휴대폰이 있어야 할 자리는 외투나 바지 주머니 속이다. 그것도 있는 듯 없는 듯 진동모드로 숨죽인 채. 아이폰 등장 이후 지위가 격상됐다. 아이폰만큼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주머니 속에서 탁자 위로 올라왔다. 그것도 주인과 수시로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모임에서 휴대폰은 두 가지로 구분됐다. 탁자 위에 놓인 아이폰과 주머니 속에 든 피처폰.
혁신을 주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잡스를 보면 질투심이 생겼다. 애플세계개발자회의(WWDC) 무대에서 그가 소개하는 제품마다 대서특필됐다.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수천억원의 광고효과를 챙기는 잡스는 위대했다. “우리나라에는 저런 스타가 나올 수 없는 걸까. 제품 등장 시점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니 역전은커녕 따라잡을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에 배도 아팠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고 1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변화가 생겼다. 스마트폰 단일 모델 판매량 세계 1위를 고수하던 애플이 그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주력모델 교체 과정에서 생긴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이 1위를 뺏긴 건 처음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새로 발표한 아이폰5에 혁신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폰5 발표 후 애플 주가는 고점 대비 22% 빠졌다. 6개월 전 수준이다. “잡스가 살아있다면 아이폰5에 만족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특허전쟁에서도 체면을 구기고 있다.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라는 영국법원 명령에도 애플은 여러 차례 꼼수를 부리다 반(反)애플 정서를 키웠다. 승기를 잡았나싶던 미국법원 특허소송에서도 입지가 불안하다. 한술 더 떠 구글과도 특허전쟁을 벌이겠다며 벼른다. 이젠 세계 특허시장의 싸움닭이 됐다. 슬슬 애플답지 못하다는 말도 나온다. 과연 잡스라면 또 다른 혁신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일까 아니면 기존의 혁신을 지키기 위해 지금처럼 세계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질문에 답할 잡스는 지금 없다.
폐쇄적인 iOS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개방형 안드로이드 OS가 스마트기기 시장의 4분의 3이나 장악했다. 애플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잡스의 애플이었는지 애플의 잡스였는지, 잡스가 혁신의 아이콘이었는지, 애플이 혁신의 아이콘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건 잡스가 없는 지금의 애플 몫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