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산업 역사에서 일본은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넘고 싶은 산이었다. 산업입국(産業立國)을 선언한 우리나라가 1978년 도입한 수입선다변화제도는 산업계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입선다변화는 특정국가와의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해 품목을 정해 놓고 수입을 금지한 제도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일본 공세의 울타리가 돼 줬던 이 제도는 WTO 협상 타결과 OECD 가입으로 1999년 폐지됐고, 전자왕국 일본과 한국 전자업계는 이때부터 정면승부에 들어갔다. 곧바로 ‘일본 전자제품 한국 상륙 쓰나미’가 시작돼 시장은 잠식당했지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는 기회가 됐다. ‘코끼리 밥통’이라고 불린 조지루시 밥솥에 대한 주부의 환상은 깨졌고, 당시 가장 뜨거운 첨단성장시장이던 휴대폰에서도 경쟁력을 확인했다. 그때 무너졌다면 지금 일본 안방으로 치고 들어가는 한국 스마트폰의 위상도 없을 것이다.
좀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60년대 후반 한국 전자산업 태동기. 당시 일본 업체와 제휴는 필수였다. 말만 제휴지 수익배분을 전제로 일방적인 ‘가르침’을 받던 시절이었다. 일본 성공모델을 닮아 보려는 산업후진국 중 하나인 한국. 일본은 우리가 속속 개발해 내는 제품에 ‘대단하다’는 칭찬을 남발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20년 이상의 기술 격차는 결코 극복할 수 없을 테니까.’ 일본에 있어 한국 전자산업의 존재는 그랬었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많은 것을 압축했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10년이니 20년이니 하던 전자산업의 기술격차는 무의미해졌다. 디지털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장을 낸 한국 전자IT산업은 아날로그시대를 풍미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자로 당당히 올라섰다.
‘일본 전자제품이 몰려온다.’
지난 1999년 7월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를 전후해 국내 신문을 뒤덮었던 기사 제목이다. 업계는 연일 일본 전자업계의 경쟁력과 상황을 분석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IT산업이 역으로 일본 언론의 단골 기삿거리다.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에는 애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에 그들의 관심이 꽂혀 있다. 삼성이 당면한 고민에 대한 분석은 너무 친절하고 상세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일본 소비자가 느끼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와 애플 아이폰3GS의 디자인 유사도’ 설문을 진행, ‘혼동할 가능성이 40%’란 제목으로 기사화하는 특별한(?) 관심까지 표했다. 이쯤 되면 해당기업에는 관심이 ‘불편’으로 다가온다.
‘한국 스마트폰이 몰려온다.’
지난 1999년 일본을 두려워 한 한국 산업의 정서와 2011년 지금 일본 산업계의 정서가 비슷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 산업이 넘기 힘든 산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전자왕국 일본’, ‘IT강국 한국’ 두 나라 모두가 이제는 스마트 쇼크에 감전된 채 ‘왕국’과 ‘강국’ 딱지를 반납한 초라한 현실이다.
심규호 전자산업부장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