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후쿠시마 · 아부다비 · 서울

 지축을 뒤튼 천재지변은 ‘기술과 안전’의 일본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일본이 자랑하던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원자로 외곽 방호벽이 폭발로 날아간데 이어, 위태롭던 3호기마저 폭발하면서 반경 40㎞내 주민 소개령이 내려졌다. 추가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그냥’ 바닷물로 노심의 열을 낮추고 있다니, 원자로는 영구폐기하더라도 최후의 안전은 지키겠다는 일본 정부의 선택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짐작 간다.

 일본은 세계 최대 원전설계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국가이며, 환태평양조산대 위에 걸쳐 있는 자국의 지리적 약점을 무릎 쓰고 동·서 해안선을 따라 50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스스로를 지진대 위에서 원전을 돌려도 끄떡없는 원전 기술국이라며 ‘안전 신화’를 자랑했다.

 일본의 자존심은 이번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휩쓸려 가버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한 비슷한 시간, 이명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있었다. 10억 배럴 이상의 유전을 확보하는 발표가 나오긴 했지만, 사실 대통령 방문의 주된 목적은 지난 2009년 연말 우리나라가 따낸 UAE 원전 기공식 참석이었다.

 언론 전문 용어로 김이 빠져도 너무 빠져버렸다. 경쟁하는 다른 국가가 비슷한 원전 기공식을 하는 정도의 물타기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던 일본 원전이 무참하게 깨진 것이다. 뉴욕과 런던 등 세계 금융시장에선 전 세계적인 ‘원전 르네상스’에 제동이 걸렸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금융자본은 심리를 파고든다. 때론 냉철한 분석과 이론도 작용하지만, 이는 명분이나 사후 근거를 남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분명, 전 세계 돈의 흐름은 심리에 따라 움직인다.

 며칠 전만 해도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유가는 일본 대지진이 터지면서, 생산량이 늘지도 않았는데 곤두박질치고 있다. 석유 소비가 줄 것이라는 심리에 따라서다. 상식적으로 폭락할 것처럼 여겨졌던 엔화는 뉴욕·런던 등 주요 외환시장에서 오히려 대지진 이전보다 강세를 타고 있다. 95년 고베지진 때처럼 외국에 퍼져 있는 엔화를 일본 자국민들이 사들여 본국으로 송금하려할 것이라는 수요심리 때문이다.

 원전에 대한 각국의 신규 건설 수요도 한동안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전 세계적 공감대가 이번 원전 폭발로 촉발된 지구적 불안감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그 때까지는 말이다.

 대지진 후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서울.

 서울 증시도 출렁거렸고, 외환시장 변동폭도 컸다. 이번 집중 타격을 입은 일본 전력·전자·자동차·화학·정유산업과 연관성이 많은 업종이 대부분 우리나라 코스피에 몰려있는 데도 코스피지수는 닛케이 폭락과 반대로 상승 마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연관성이 적은 코스닥은 흡사 일본 주식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이 또한 심리 때문이다.

 줄잡아 2만㎞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안이 하나의 인과 관계를 갖고 움직이는 무서운 시대다. 냉철한 이성과 독한 추진력이 없으면, 개인적 손실은 물론 국가적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차갑게 대응하되, 따뜻하게 일본을 돕자.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