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여중생들 사이에서는 ‘1999년생’이란 만화가 유행이었다. 1999년에 출생한 초능력 세대가 외계인 침략으로 멸망 직전인 지구를 지킨다는 줄거리다. 만화는 어디까지나 만화일 뿐 1999년 출생한 어린이 중에 초능력자가 있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상상하는 김에 좀 더 나가보자. 조선시대에 살던 선비가 어느 날 갑자기 2010년 서울 한복판에 떨어진다고 해보자. 단언컨대 그는 자기가 초능력자의 세계에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수 천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예사인 세상이다. 수 만리 밖에서 일어난 일을 즉시 보고 듣는 천리안과 소머즈 귀도 있다. 도로 위에 건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 꿰뚫는 투시 능력, 초대형 컴퓨터에 접속해 모든 정보를 빼오는 컴퓨터 인간도 꿈이 아니다(뇌파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만화 속 1999년생과 비교해도 별로 손색이 없다. 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 등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이들 세대는 초감각과 초지능을 부여받은 세대인 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의 부상과 함께 공급자 못지 않은 지식을 가진 ‘프로슈머’가 화제였다. 스마트 기술과 소셜 서비스와 함께 부상하는 소비자는 ‘옴니슈머’, 즉 전능한 소비자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와 같은 스마트 기기로 서비스에 접속하는 순간, 이들은 육체와 지식의 한계를 넘고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의 물리적 한계도 뛰어넘는다. 사회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지위의 한계도 벗어던질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공급자가 만들어준 기기를 그대로 쓰는 대신 애플리케이션 장터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골라서 자신에게 최적화된 기기를 만들어 낸다. 증강현실(AR) 서비스와 결합한 소셜 쇼핑으로 제품의 가격과 유통정보를 훤히 꿰뚫고 막강한 구매 집단이 되어 가격을 조정할 수도 있다.
일상을 영위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순간에도 옴니슈머의 힘은 막강하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던 일방향성 정보에서 벗어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각도의 정보를 접할 것이며 위키리크스처럼 과거에는 공개되지 않던 고급 정보를 듣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힘을 빌려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트위터를 통해 범죄자를 찾아내고 심지어 선거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옴니슈머가 바라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맞춰진 세상이다. 스마트폰에서 주유소별 기름값을 비교해 주듯 시간대나 전력 공급처별로 전기 가격이 공개된다면 어떨까? 사용자별로 최적화된 전기 공급처와 시간대별 소비량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 화제인 스마트그리드 서비스의 핵심이다.
한국인이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 경기가 박지성 선수 중심으로 중계되기를 바랄 것이다. 구글이 방송 업계에 진출한다면 경기장에 선수의 수 만큼 카메라를 놓고 각 카메라의 IP 주소로 시청자들이 접속하라고 하지 않을까?
가장 쾌적한 실내 온도는 과연 24도일까?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더위를 많이 타고 어떤 이는 추위를 많이 탄다. 운동을 마친 직후는 더위를 타고 감기에 걸린 날은 추위를 탄다. 사용자의 체질이나 상태에 따라 그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가 제공되어야 진정으로 개인에게 맞춰진 주거 환경이다.
스마트시대에 개인화의 대상과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사물이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개인은 점점 강해진다. 주거와 문화생활·의료·금융·교육·법률과 세무, 각종 공공 서비스 등 소비자가 접하는 모든 서비스들이 양방향성을 띠면서 개인화되는 세상을 우리는 곧 보게 될 것이다.
손민선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msson@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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