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3월 24일자 한 신문에는 서해 연평도(延坪島) 일대에 조기잡이 배가 남한 각처에서 몰려들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해군이 해상휴전선(지금의 NLL)에 경비정을 증파했다는 기사가 났다.
지금은 꽃게로 더 유명해졌지만, 연평도는 17세기부터 조기잡이로 명성이 높았다.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특급 진상품이었다. 한국전 이후에도 매년 조기잡이 철이 되면 전국 각지의 조기잡이 배가 몰려들고, 파시가 형성될 정도로 북적였다. 황금색 비늘의 ‘조기’로 인해 현금이 몰리다보니 1960~1970년대 술집과 노름이 번성했고, 1974년도 봄 또 다른 신문에는 당시로선 낯선 ‘우먼파워’라는 제목까지 달아가며 연평도 여성들이 조기철에 고질적으로 번성했던 술집과 환락가를 퇴치했다는 소식도 실렸다.
드러누운 것처럼 평평하게 이어진 섬이라고 붙여진 ‘연평(延坪)’은 그렇게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해왔다.
이 연평도에 포탄이 날아들었다.
온 섬이 쑥대밭이 됐다. 1·2차 연평해전에서도 섬이름이 등장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다 위에서의 선상 전투였지, 민간인들이 주거하는 섬에서의 전투는 아니었다.
민간인이 포탄 공격의 대상이 된 것 자체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 터진 일이다.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는 북한 포의 사정권에 들어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조업하고 생활하는 삶의 터전이다.
대한민국의 힘은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연평도는 크고 작은 남북 분쟁이 있을 때 마다 이동은 물론이고 조업·생활권까지 군사작전에 양보해야 하는 불편한 지역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불편함을 감내해 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녕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인 우리나라 연평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세계를 향해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 정부가 세계인의 눈에 부합할 정도로 우리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려 하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
이진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