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로지 차별화만 생각합니다. 소니 · 필립스 등 브랜드 파워를 지닌 대기업과 어깨를 견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김석기 삼신이노텍 사장(49)의 원칙은 확고했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제품을 선보여야만 포화상태에 이른 음향기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스무 번 넘게 `차별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언뜻 보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김 사장은 달랐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에 헤드폰 제조업체가 200여 곳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오디오 시장이 침체하면서 10여 업체만 남았습니다. 그나마도 대부분 중국에서 ODM(제조업자 설계생산) 형태로 제작합니다. 오디오 액세서리도 포화상태입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점유율을 높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지요.”
김 사장은 이야기 도중 이어폰을 하나 꺼냈다. 최근 출시한 친환경 이어폰이다. 이어폰에 들어가는 케이블은 옥수수 · 감자 등 식물 추출 녹말을 소재로 만들어 70% 이상 스스로 썩는다. 여기에 `투원`이라는 자체 상표를 달았다. 이 제품은 상품성을 인정받아 버라이즌을 통해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올 하반기에는 블루투스 기능을 내장한 보호안경이라는 새로운 제품도 내놓는다.
이처럼 주목받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20여 년 동안 현장을 누볐던 김 사장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86년 삼신이노텍의 전신인 삼신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오늘까지 음향기기라는 한우물만 팠다. 그 과정에서 오디오 세트부터 주변기기 제조까지, 많은 업체들이 흥하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삼신이노텍 역시 내수와 주문자상표생산(OEM)에 집중했던 탓에 시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 금융을 받던 시절에는 자금이 돌지 않아 여러 번 난관에 부딪혔다. 이에 김 사장은 과감히 국외로 눈을 돌렸다.
“외국 업체는 결제 관계만큼은 확실합니다. 금전 문제로 매번 어려움을 겪기보다 제대로 만든 제품으로 외국에서 먼저 승부를 거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일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다.
“국내와 해외는 주파수 환경이 다르더군요. 아무리 한국에서 잘 팔리던 물건도 외국에 가져가면 모두 반품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문제입니다.”
게다가 제품 하나가 반짝 인기를 얻으면 금세 중국산 모조품이 시장에 풀렸다. 이쯤 되면 쉬운 길을 모색할 법도 한데 김 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익이 생기면 바로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다. 2007년께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관심을 받으면서 벌어들인 수익도 대부분 R&D에 투자했다.
`투원` 이어폰은 우직한 투자의 결실이다. 하지만 그는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자신했다. “그동안 준비해온 다양한 아이템을 차례대로 시장에 선보일 겁니다. 아직 밝힐 순 없지만 삼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갈 `친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