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보니 과학기술계에도 기관 통폐합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이 수월찮게 나돈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과학기술인들이 이런 소리를 듣고 좋을 리 만무하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한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대부분 자기 일밖에 모르는 탓이다.
과학기술인들의 사고 구조는 인과가 분명한 ‘디지털’방식이다. 과학적인 현상을 구명하고 논리를 세워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밥 먹고 하는 주업무다. ‘0’이 ‘1’이 될 수 없기에 아닌 것은 아니다. 고집도 세다. 우리 나라 박사의 20%가량이 운집해 있는 ‘대덕’에서 느껴보니 그렇다.
특이한 취미를 가진 괴짜 과학자도 많다. 일반인은 취미로 하기에 다소 따분한 진공관 앰프 전문가가 출연연구기관마다 한두 명씩은 꼭 있다. 미확인비행물체(UFO)나 심령, 무한 동력, 기(氣) 치료, 육각수 등에 빠져 있는 과학기술자도 있다. 카레이서를 능가하는 자동차 전문가, 경비행기 조종사도 있다.
과학기술자의 또 다른 특징은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하다는 것이다. 영악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줄 안다. 공무원들은 서류 문구 하나하나를 따져 페널티를 가하고 있는데, 내가 양심적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대전에 업무차 KTX나 버스를 타고 내려온 공무원이 저녁 먹고 서울 올라갈 때는 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타고 가는지 이해 못하는 연구원도 많다. 정부부처 두 곳이 산하기관장 자리 다툼을 하다 공평하게 나눠먹기식으로 부원장급 자리를 만들어 내려보내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관심이 없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초도업무 순시차 대덕에 있는 기초과학지원연구원과 국가핵융합연구소를 방문했다. 걸린 시간은 50분이다. 좋게 해석하면 주목적인 충남대 대학정보공시제 개통식 행사에 참석했다 바쁜 틈을 쪼개 연구기관까지 찾은 것이고, 안 좋게 해석하면 대학 행사 뒤 양념으로 잠시 연구기관을 들른 정도다. 어쨌거나 과학이 교육에 밀려 ‘뒷전’ 신세가 된 것은 분명하다.
“사업을 하려면 1분 이내에 자기를 이해시켜야 한다?” 이 문장을 읽는 공무원 중에 가슴이 뜨끔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제 내용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고 ‘1분 내 이해 못 시키면 사업은 없다’는 식으로 과제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이 외국에서 20년 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내에 들어와 일하는 나이 지긋한 과학자들에게 ‘장이’ 취급하는 것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감정을 건드리는 반말이나 던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연구원들의 푸념도 나온다.
과학이 교육에 흡수돼 가고 있다. 몇 년 뒤에는 과학이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연구원들도 있다.
“과학기술은 지난 정부에서 장렬히 전사한 것이지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합니다. 재주는 실험실 ‘곰’이 부리고 명예와 돈은 공무원과 산업계가 다 가져가는 판국에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하는 과학기술인은 참으로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팀원들 볼 면목도 없고 이 참에 교수직으로 원서나 내볼까 고민하며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리는 한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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