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끝)변리사법개정
지난 2003년 11월 대한변리사회 회장단이 나를 찾아왔다. 지적재산 경제전쟁 시대라는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국가의 지재권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당시 임의단체였던 변리사회의 법정단체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한 법개정 추진을 위해, 전문입법경험이 많은 나를 회장으로 추대하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20여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이제 좀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였다. 그러나 ‘세계 지적재산 경제전쟁 시대의 도래’라는 거부할 수 없는 파고 속에서, 내 한 몸의 안일을 위해 변리사회 집행부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했기에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미 지적재산을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경제를 장악하려는 전략을 추진했다. 세계 지재권 경제전쟁에 우리도 하루빨리 거국적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국가적 절박성에도 불구하고 2004년 3월 내가 제32대 대한변리사회장으로 추대된 이후 변리사회가 법정단체로 되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하고 고된 과정의 연속이었다.
첫째, 지재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공감대가 너무나 미약했다. 둘째, 정부의 기본입장은 기존 법정단체도 임의단체이고 법정단체를 위한 법개정을 지지하는 여론도 없으며 또한 정부정책에도 상충한다는 것이었다. 셋째, 일부 변호사가 ‘한국법조변리사회’라는 임의단체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넷째, 국회 법사위 대부분이 변호사로 구성돼, 직역갈등이 잠재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 같은 두터운 벽을 깨기 위해 서울에서 ‘한·중·일 특허공동체’ 관련 국제회의를 열고 중국·일본의 변리사회장을 위한 언론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또 미국·영국·독일·프랑스를 차례로 방문하여, 양국 변리사회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관련 내용이 해외에 주재중인 한국의 특파원을 통해 보도되도록 노력했다.
또 이 같은 보도 내용을 정리해서, 관련 정부기관과 국회의원에게 전달하는 일도 병행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무거운 일은 정부핵심인사와 국회의원을 직접 방문해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괴로운 일은 일부 우리 회원이 법개정 과정에 변리사법 8조의 훼손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또 일부 회원은 인격 모욕적 내용을 e메일로 유포하기도 하고, 공식회의에서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국회 법사위의 일부 변호사출신 의원은 단체의 국가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법사위 법안통과를 도와주었고, 변리사회 임원진은 회장과 일심동체가 돼 힘을 모아주었다.
결국 여러 분의 도움으로 올해 2월 ‘변리사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때가 회장 임기만료를 앞둔 시기여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의와 명분만 있으면 일은 반드시 성사된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이제 ‘창조적 두뇌입국과 지재권 경제’라는 대의와 명분이 나라경제를 살리는 데 국민의 노력과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격려했던 많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rheeshph@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