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읍참마속(泣斬馬謖)은 큰일을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버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 제갈량이 전장에서 패퇴한 충복 마속(馬謖)을 군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참수한 얘기다.
제갈량 주위 장수들이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참수를 말렸으나 제갈량은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더 큰 죄가 된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해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며 돌아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부산지역 어려운 경제현실을 돌이켜보면 이 같은 읍참마속의 고사성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산 IT업계와 부산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안타깝지만 제살을 도려내는 비판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부산 IT업계는 두 가지 당면 문제에 봉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외부로는 지방 정부의 IT업계를 위한 화려한 미사여구와 달리 정작 해당 공무원들의 IT업계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공무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업계의 일원으로서 남모르는 안타까움이 자못 크다.
지방정부가 하나의 업종에 불과한 IT업을 살리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IT뿐 아니라 조선·자동차·건설·신발·화학 등 부산시에 경제 상승 효과를 주는 업종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용 창출 효과가 뛰어난 산업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과 이것이 공무원의 치적관리에 더욱 유리하다는 점을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IT산업이 부산시 전략산업으로 지정된 지 벌써 3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부산시는 과연 얼마만큼의 기대와 애정으로 IT산업 발전을 위해 나섰는지 묻고 싶다. IT 관련 발주사업에 지역 업체의 능력은 원천적으로 배제된 채 정치력과 로비에 따른 결정이 관행화됐고, 이는 결국 지역 IT기업의 성장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볼 문제다.
나아가 IT 발주사업을 감시 감독할 의지가 없거나 아니면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부산 IT업계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감싸줄 수 있는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있다. 조만간 열릴 지자체 선거에서 IT산업의 발전 방안은 이것이라며 다시 또 요란한 공약(空約)만 난무하는 것은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또 하나는 IT업계 내부적으로는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일했는지 묻고 싶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단순 홈페이지 발주부터 복잡한 SI 개발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서 지역업체 간 과당 경쟁이 출혈 경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검정받지 않은 품질관리로, 또 제대로 숙련되지 못한 기술력으로 당장의 수주만을 위해 목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업계의 현실은 해당 발주기관으로 하여금 더는 지역업체에 일을 맡기지 못하겠다는 빌미를 제공했고 이를 놓고 다시 업체들이 서로 헐뜯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중견업체를 중심으로, 또는 조합이나 협회 등 결성된 단체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고품질 기술력을 내세우면 얼마든지 중앙의 대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해 수주할 수 있다. 지역조합의 일원으로 조합의 보증하에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면 더는 ‘대기업에 줄대기’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방정부의 진정 어린 관심과 지원도 동반돼야 한다.
귤은 그 두꺼운 껍질을 벗겨야 속살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듯이 우리 부산 IT업계 스스로 껍질 속 자부심을 남이 알아주기만 바랄 것이 아니다. 신독(愼獨)의 자세로 겸허하게 내공을 쌓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껍질을 벗어버릴 시기다.
◆방진배 부산인터넷기업협회장 ceo@kms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