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표준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운용할 ‘제2차 국가표준 기본계획’이 지금쯤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하는 시점이지만 아직까지 각 부처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표준 기본계획 마련이 장기 표류할 경우 국가표준 정책의 혼선은 물론이고 기업들의 중복업무 발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그간 지적돼온 표준화와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표준통합관리기구(NSB)를 만들어 표준·기술기준·민간표준 등을 통합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기본계획 초안을 마련해 관련 부처와 협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 넘는 협의기간에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환경부·건설교통부 등은 업무 특성에 따라 고유 영역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만을 고수하며 산자부의 국가표준 관리체제의 단일화 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부처는 “표준 관리체제를 통합 단일화할 경우 많은 권한이 산자부·기술표준원에 집중되므로 이는 사실상 모든 부처의 관련 표준을 관장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이번 국가표준 정책의 표류가 기본계획 초안을 만든 산자부와 관련 부처 간 힘겨루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부처 간 영역다툼이 어제오늘 일어난 일이 아닌데다 그간 벌어져 온 부처 간 갈등 해소과정을 감안하면 이번 사안의 해결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 부처들이 산자부의 기본계획 초안에 반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고 나름대로 타당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표준이 부처별로 제각각 운용되고 서로 다른 표준이 난립함으로써 취지와는 정반대로 각종 경제적 비효율성과 기업들의 중복투자, 비용 증가, 수출장애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해 온 점을 고려하면 표준체제 정비의 필요성이 더 크다.
사실 부처별로 따로따로인 표준체계를 통합·정비하자는 것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 나온 제1차 국가표준 기본계획 때 제시됐었다. 또 국가표준기본법이 만들어지고 국가표준심의회가 설치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 문제로 부처 간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들이 국가표준 체제 정비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다고밖에 볼 수 없다.
오늘날 세계무역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를 들라면 단연 국제표준 전쟁 또는 국제표준 장벽이란 말로 대변되는 표준화 문제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기술이라지만 표준의 채택 여부가 기술의 경쟁력을 가름하고 나아가 시장지배를 결정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주요 선진국이 연구개발 예산의 10%를 표준에 투입해 연구개발과 표준을 연계하고, 이를 토대로 국제 표준화 활동을 주도하려는 것은 단지 경제적 효율성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고려한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는 기술경쟁 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표준전쟁이 한창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자체적인 국가표준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고 있고, 그것도 부처 간 갈등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업혁신의 핵심적 인프라인 표준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표류하는 한 앞으로 우리 산업활동의 효율성은 물론이거니와 신성장산업의 국제표준화 작업 등 지속적인 국제경쟁력 확보에 큰 장애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부처 간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표준 관리체제를 수립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범 부처가 나서 단순히 부처 간 규격의 중복과 난립을 정비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표준정책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고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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