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경 우리 회사 고유의 제품을 개발, 판매하는 제조업으로의 변신을 계획한 나는, 그간의 사업 경험도 살릴 수 있고, 산업화가 빠르게 진전되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자동화 부문을 사업 영역으로 정하고 곧바로 아이템을 물색하여 심사숙고 끝에 첫번째 개발 아이템을 선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카운터였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선정 원칙이 있었으며, 지금 돌아보아도 상당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원칙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즉, 국내에 경쟁자가 없을 것, 시장 규모가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을 것, 지속적인 성장 가능 품목일 것 등의 원칙을 정하고 선정한 제품이 디지털 카운터였다. 당시 일본 제품 외에는 국산 제품이 없었고(무경쟁), 그러므로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으며(고수익성), 당시의 물량은 크지 않았지만 향후 지속 성장이 가능한 품목(성장성)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때부터 밤을 낮 삼아 몇 안되는 직원들과 함께 제품 개발에 매달려 갖가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제품 개발을 시작한지 2년여만인 1984년에 탄생시킨 제품이 바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카운터인 오토닉스 K시리즈였다. 당시의 제품은 철판을 구부려 만든 조악한 것이었으나, 제품의 품질 만큼은 외산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사리 제품을 개발한 기쁨도 잠시, 냉담한 고객들의 반응에 또 한번 낙담할 수 밖에 없었다. 국산 제품이 아예 없던 시장에서 이름도 못 들어본 국내 중소 기업이 개발한 제품이라고 하니,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영업 사원과 함께 구로동 전자 부품 상가를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면서 꾸준히 판매상들을 설득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때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제품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판매가 되면 대금을 회수하는 판매 정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판매점에 제품이 진열되고나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품을 써 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면서 “외산 제품에 비해 가격은 절반이면서도 품질은 수준급”이라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딜러들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4년 10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한국 전자전람회에 K시리즈 카운터 제품을 출품하였다. 여기서 우리 자신도 놀랄 만큼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아 한껏 고무됐으며, 해외 바이어로부터도 주문을 받게 되어, 물량은 크지 않지만 최초의 수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객으로부터 제품 클레임이 발생하였는데, 접점의 납땜 불량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품질로 승부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이런 작은 부주의도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비가 쏟아지던 그날 저녁 전직원을 공장 마당에 불러놓고 불량으로 회수된 제품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망치로 그것을 모두 부수도록 했다. 전직원이 정신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하겠다는 의미였고, 이것이 주효했는지 불량률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품질 관리 노력과 함께, 신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1986년에는 근접 센서를 국산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자동화의 핵심인 센서 기술 국산화에 앞장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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