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준협 위디츠 대표(3)

 93년 대표를 맡은 이후 96년까지 4년 동안 우리 회사는 순탄하게 성장했다. 연 매출 규모가 10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커졌고 직원 수도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97년 국내외 경제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더니 수많은 기업이 부도나고 환율이 연일 폭등하면서 그 해 11월 결국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회사도 금융시스템 붕괴와 경기 침체라는 거센 폭풍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나는 그 무렵 2개월 동안 일주일에 1, 2개 업체의 부도 소식을 접했고 혹시나 잘못되나 늘 노심초사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매출 확대를 통한 성장 위주의 경영 정책을 지양하고 보수적이지만 안정적인 경영 정책을 펼쳤다. 기존 업체에 추가 여신한도증액을 금지하고 여신 기한 역시 평균 4개월에서 45일로 앞당겼다. 대신 상대적으로 거래 안전성이 확보된 업체에 적극적 영업을 폈다.

 불요불급한 경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최대한 줄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설립이래 10년 넘게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지만 자칫 큰 폭의 적자를 낼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나 역시 다른 회사처럼 감원·감봉을 통한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직원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었고, 구조조정이 오히려 근무 분위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나는 이 위기를 ‘생산성 제고’로 정면 돌파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때부터 전 임직원이 합심해 생산성 배가 운동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엄격한 채권과 여신 관리로 고객사의 반발도 다소 있었으나 점차 이해를 해주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원활한 반도체 공급과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펼쳐 별다른 동요나 이탈이 없었다. 더구나 LG전자와 같은 안전한 대형 거래처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회사 임직원도 초심으로 돌아간 듯 의욕을 불태웠고 단합된 힘을 발휘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IMF체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오히려 고객사와 유대 관계가 긴밀해졌고 애사심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힘들었던 IMF 체제가 지나가고 2000년. 전 세계적으로 IT산업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진감래였다. 우리 회사는 IMF체제 다음해부터 다시 매출과 이익이 급증, 2000년에는 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설립 이래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했다. 생산성 지표인 1인당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30억원과 1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이적인 실적에 임직원 모두 ‘우리가 정말 해냈구나’라는 감격의 탄성을 쏟아낼 정도였다.

 소기업으로 출발해 어엿한 중견 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그즈음 어느 날 집무실에 놓여있는 선친의 영정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가슴 한가운데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회사를 물려받아 연 매출 100억원 대 회사를 1000억원 대 회사로 10배 이상 성장시킨 것에 대해 영정 속의 선친께서 지긋이 바라보시며 환하게 웃고 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peter@withit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