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을 생산자가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EPR)의 대상에 개인용 컴퓨터(PC)를 포함시킨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었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환경부가 올해부터 EPR 대상에 포함시킨 플라스틱을 비롯한 유리용기,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PC 등 가운데 전자제품인 냉장고나 세탁기, TV 등의 상반기 재활용률은 79∼56.4%로서 모두 연간목표량 달성이 무난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PC의 경우 상반기에 연간목표량 10만9000대의 7.3%밖에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하반기 재활용률을 합치더라도 15%가 채 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PC생산업자는 올해 수거하지 못한 85%에 해당하는 PC제품의 회수 및 재활용 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부과금으로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PC업계는 “이미 중고 PC가 민간업체에 의해 재활용되는 상황에서 굳이 PC를 EPR 품목에 포함시킨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하고 있고 정부는 “올해 PC업계에 배정한 재활용 물량은 그대로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올해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EPR는 폐기물 예치금제를 한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OECD 국가가 대부분 도입하고 있는 선진 환경보호 제도다. 전자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날이 갈수록 짧아져 소비자들이 제품을 수시로 교체함에 따라 폐전자제품도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EPR는 그러한 추세에 적절히 대응한 것으로 잘만 운용하면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유용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다행히 정부는 올해부터 여러 품목에 대해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대부분은 큰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단지 PC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 품목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문제일 수밖에 없고 또 이 제도가 앞으로 휴대폰 등 여타 품목으로 적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시행초기라 할지라도 관련업계가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환경부도 지난해 EPR 시행을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현재보다 2배 가량 많은 20만대의 PC를 재활용량으로 잡았다가 그것을 절반으로 줄인 바 있다. 그 당시 환경부는 중고 PC는 유무상으로 중고상에 의해 수거되고 기업체에서 배출되는 물량도 수출용으로 재활용되기 때문에 PC생산업자가 회수할 수 있는 물량은 거의 없다는 업계의 주장을 일부 반영한 바 있다.
결국 이번에 극히 낮은 PC 재활용률은 바로 업계가 예측하고 주장했던 결과가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 PC제품 자체가 EPR 품목에 포함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PC는 PCB에 납 등 중금속이 적지않게 함유돼 있지만 금과 같은 귀금속도 있어 다른 전자제품과 달리 재활용이 가능한 점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PC 생산업자가 다각도로 PC를 수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PC업체가 재활용률을 맞추기 위해 중고상처럼 중고품을 수거하러 다녀야 한다면 그것은 전자업체의 경쟁력을 정부가 떨어뜨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PC를 EPR 품목에 존치시키고 또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과금을 내게 하는 것은 명분이 약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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