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영남 사장(2)

 대담하고 적극적인 성격은 내 사업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다.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항도 부산의 5녀1남 딸부잣집에서 셋째로 태어난 나는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천성적으로 밝고 솔직했던 성격은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덕분에 내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어찌보면 특별히 빼어난 점이 없으면서도 과감하게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도 이런 타고난 성격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스승의 날이었는데 전 학급이 교장선생님 모셔오기 경쟁이 붙었다. 당시 부반장이었던 나는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교장 선생님을 우리반 교실로 모시는 데 성공했다. 어리지만 당돌할 만큼 당당하게 교장선생님께 초대의 말씀을 드렸던 것이 적중했다. 목표한 바를 해내겠다는 의지와 유연한 수완이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내 안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학창시절은 친구들에게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카운셀러로서 그리고 한번 하겠다 맘을 먹으면 반드시 수완 좋게 해낸다는 주변의 평과 함께 나를 한층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세월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당시 여성들이 흔히 가졌던 현모양처의 꿈과는 다른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반드시 뭔가 이루고 기여하며 살아가겠다는 꿈.’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는 나의 마음가짐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곳은 부산 소재의 섬유·모피·전자제품 제조업체였던 광덕물산이었다. 부푼 마음으로 출발한 첫 직장에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숨어 있던 사업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면세점에서 영업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종종 놀라울 만한 매출을 올리곤 했다. 특히 외국인 고객들의 호응이 컸다. 그리 유창하지 않은 외국어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열과 성을 다해 그들에게 친절히 설명해가며 적극적인 판매활동을 벌였다.

 업무에 한창 재미를 붙였던 당시 내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일단 한번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냈다.

 심지어 며칠 동안 바이어를 찾아다니며 조른 적도 있었다. 어느 부서든 내가 맡기만 하면 매출이 높아지자 회사에서는 야무진 여직원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광덕물산에서 나는 더 이상 입사 3년차의 평범한 여사원이 아니었다. 82년을 전후해서 나는 말 그대로 영업력 좋은 확고한 인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외국인을 만나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바이어로 만드는 능력 등은 아마도 이때 쌓은 자신감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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