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생산과 소비의 위축, 경상적자 확대 등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직도 ‘관망’인 것 같아 걱정이다. 지난달 29일 산자부가 수출유관단체들과 가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관련 수출 대응방안 수립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에서도 아직까지는 수출피해가 크지 않고 앞으로의 추세를 ‘점검’해 대처하겠다는 정도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우려하는 심각성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사스 추정환자가 발생해 해외 비즈니스는 물론 외국인투자 축소, 내수침체 심화 등 유무형의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다고 새 정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방관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동안 거부감을 나타냈던 경기부양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이 부동산이나 금리를 동원하는 것이라면 찬성하기 어렵다. 금리인하는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고 민간소비를 촉진시키는 경기활성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시중의 유동성과 아파트 값 상승기류 등에 비춰볼 때 실효성이 낮아 보인다. 오히려 부동산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은 재정정책이 필요한 때다. 특히 IT수요 진작을 위한 투자유인책이 요구된다. IT는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국민총생산(GDP)의 14.9%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IT의 기여도가 높다는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IT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IT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담보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할 수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초고속 인프라, 광범위한 IT내수기반, 기술혁신을 위한 테스트베드 등 우리나라가 갖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얘기다.
이제는 국가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에서 IT수요 진작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첨단 전자제품에 대한 특소세 인하, 정보화 프로젝트 조기발주, 이동통신단말기 보조금 탄력 적용 등은 당장 경기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자제품 특소세 인하의 경우 내수촉진 외에 수출확대와 관련산업 부양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보화는 ‘정보통신 일등국가’를 실현하는 밑그림이라는 점에서 공공 프로젝트 조기발주와 같은 재정투자가 더욱 요구된다. 산업화시대의 경기부양 수단이 ‘건설’이었다면 지금은 ‘정보화’ 투자가 가장 우선되고 집중돼야 할 분야다. 추경예산을 쓸 만한 곳이 없다고 아이디어를 되물을 때가 아니다.
정부는 특히 정책에 가장 민감하고 전후방 산업효과가 큰 통신서비스에 대해 더이상 뒷짐을 져서는 안된다. 단말기보조금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내수시장이 몇달째 얼어붙고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KT·SK텔레콤과 같은 선발 통신사업자들이 돈을 쌓아놓고도 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이나 두루넷·온세통신과 같은 후발사업자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현상을 정부는 너무 오랫동안 방관하고 있다.
5년 후, 10년 후 먹거리(성장엔진)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등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하다. 당장에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면 앞으로 먹고 살아야 할 성장엔진을 찾는 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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