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요금을 내려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거센 요구가 마침내 빛을 볼 모양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리고 펄쩍 뛰던 정부가 한발 물러나 이를 공론화하기로 했고, 9일에는 공청회도 열릴 예정이다.
이동전화를 사용하는 2800만 국민에게 요금인하는 당연히 반가운 현상이다. 만약 전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99.99%가 찬성할 것이고 기자도 오케이다. 이 때문인지 아직은 요금인하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정통부와 업계의 반론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다.
하지만 반대하는 소비자가 있을 수 없는 절대 선(善)이라 해도 그 과정은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이동전화 요금인하 공방은 다분히 정치적 세몰이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사업자들이 끝까지 인하를 거부하면 현재로서는 대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릴 판이다. 정통부와 업계의 논리가 먹혀들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물가 당국과 여당은 걸핏하면 물가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이동전화 요금인하를 끼워 넣는다. 이쯤되면 업계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모기소리에 불과해진다.
이동전화 요금에 관한 한 법적으로 정부와 여당의 입지는 전혀 없다. SK텔레콤만이 정통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나머지 사업자들은 신고만 하면 그만이다. 민간사업자들이 시장에서 결정한 가격을 정부가 내려라 올려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 경제 운영 차원에서 물가 당국이 적절하게 유도를 할 수는 있지만 강제는 ‘월권’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경영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경제대책에는 버젓이 언제쯤 몇퍼센트를 인하토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시민단체 역시 국민 다수의 편익에 해당하는 이동전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오히려 이를 게을리 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은 전형적인 여론몰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론이 시민단체의 유일한 무기지만 사업자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까지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사업자들의 처지와 IT경기라는 또다른 고려사항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5∼10년간 수조원을 선투자하고 그 이후부터 수익을 내는 통신산업의 특성과 IT경기를 창출하는 사업자들의 투자 여력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사업 10년이 지난 SK텔레콤을 제외하고 후발주자들은 여전히 누적적자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시장을 정치 논리나 여론으로 재단해 실패한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더구나 지금처럼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와 기업이 정서적 적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비어 있는 공중전화 옆에서도 이동전화를 꺼내 들고 안방에 누워서도 이동전화를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통신 과소비, 아무데서나 울려대는 벨소리로 상징되는 통신문화 바로세우기 등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천착하는 요금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도 많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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