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음」으로 통일한 우리글 이름

지난 24일 중국 옌지에서 폐막된 제5차 코리안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에서 남과 북은 우리 글의 국제 명칭을 「정음」으로 통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 성과는 남북간에 이질화돼 있던 우리글에 대한 표준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함께 사용하면서도 남쪽은 「한글」로, 북쪽에서는 「조선글」로 각각 불려왔다. 두 개의 명칭은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같은 국제표준화 기관에서도 우리글을 두 개의 언어로 갈라놓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정보화시대가 본격 개막된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글은 자모순, 자판 배열, 정보처리코드, 용어 분야에서 남북 이질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남측 학자와 전문가들이 우리글 체계의 표준화를 위해 북측과 다각도로 접촉해 왔지만 매번 이견이 커 권고안 정도를 발표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남과 북이 우리글의 명칭을, 비록 IT환경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정신을 되살려 「정음」으로 부르기로 한 것은 매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선 이번 합의는 이질화된 우리글의 정보처리체계를 표준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ISO에서의 단일 명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동안 남북 관계자들은 우리글의 이질화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 등지에서 수차례 회합했지만 명칭에서부터 이견을 보여 자모순, 자판 배열 등 세부 분야에서의 합의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ISO 역시 우리글에 대한 표준화 논의를 『남북 당사자들끼리의 명칭 합의로부터 시작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의식해서였는지 남북 학자와 전문가들은 「정음」을 곧바로 ISO에 공식 명칭으로 등록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번 합의는 또한 그동안 남북간에 현안이 됐던 여러 세부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예컨대 데이터베이스 호환성의 경우 훈민정음 순서로 엮어낸다면 표준화 문제가 쉽게 풀린다는 것이다. 언어처리 기반의 문자인식·음성인식·자동번역 등의 시스템 개발도 마찬가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남북이 이번에 「정음」 명칭에 합의했다고 해서 그동안 적재돼 왔던 모든 문제가 술술 풀려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합의는 남과 북의 관련기관과 학계·업계 모두를 구속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한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대표단의 성격이 북쪽의 경우 과학기술총동맹 서기장이 참석하는 등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띠고 있지만 남쪽은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어정보학회라는 사단법인체가 주체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의 국어정보학회 역할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국어정보학회는 귀국 후 조속한 시일내에 이번 성과를 세미나 등을 통해 학계와 기관에 널리 알려 이질화 해소를 위한 실천적인 방안들을 공동으로 연구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학계와 IT관련 기관 역시 이번 성과에 대해 우리글의 이질화 해소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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