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출연연을 제자리로
출연연구기관은 지난해 구조조정을 겪으며 과도하리만큼 몸집을 줄였다.
일부 기관에서는 벤처창업 붐을 타고 연구원들이 대거 빠져나가 8명으로 짜여진 팀이 끝내는 팀장 혼자 남은 곳도 있다.
연구과제 수주나 연구 등 모든 것을 팀장 혼자할 판이다.
연구원 수혈이 필요하지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깨진 출연연에 다시 돌아오는 연구원은 없다.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려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영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한 출연연 또한 상부의 지침 틀에 맞춰 구조조정을 실시했던 힘없는 허수아비에 다름아니다.
출범 한돌을 맞은 연구회는 주인의 명에 따라 논과 밭을 관리하는 신출나기 실권없는 집사쯤 될까.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소관업무가 총리실로 넘어간 지 1년여, 과학기술계는 최근들어 출연연을 또다시 흔들어놓기 충분한 개편론을 꺼내놓고 있다. 물론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 수술대에 올라 마취도 없는 무지막지한 수술(구조조정)을 받은 지 1년여만에 출연연은 또 틀과 내용을 재구성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나고 있다. 보따리 과제수주나 과제의 30%선으로 묶여있는 기계적인 경상비 편성 등은 각 기관장에게 어느 정도 융통성을 부여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 연구성과중심제(PBS)의 폐단이 어디 하루이틀의 문제인가. 학연과 지연 등에 얽매여 자기 사람을 끌어다 쓰고 사업을 맡기는 것은 이미 보편적인 일로 근본적인 토양을 바꾸기 전에는 죽어가는 분위기를 살리기 어렵다.』(에너지연 P박사)
『일부 출연연을 봐라. 지난해 많은 연구원을 내보냈지만 정작 남아 있는 연구원들이 모두 뛰어난 연구원들이기에 남아 있는가. 아니다. 윗사람에게 아부잘하고 학연과 혈연에 묶인 사람들만 살아 남았다. 나간 사람들 뒤에 채워져 있는 인물 면면을 보라. 일부 출연연은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하다. 역겨운 인사가 연구원의 또다른 이직을 부르고 있다. 쓸 만한 인사는 모두 창업전선에 나가 있는 현실을 앞에 놓고 과학입국과 미래한국을 거론할 수 있는가.』(화학연 S연구원)
『반대는 없다. 다만 예스맨만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위에서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아랫사람의 바른 인사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구조조정을 했더라면 반발은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구조조정을 인정하는 연구원은 거의 없다.』(전자통신연 J박사)
정부 출연연 실무선에서 묵묵히 일해온 연구원들의 항변이다.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일해온 연구원들의 목소리다.
물론 구조조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말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의식은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피해를 입어 억하심정을 역설하는 연구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출연연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물들을 끌어안을 줄도 알아야 한다.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다.
『출연연별로 특성이 다르고 기능이 다른 만큼 설립목적에 따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출연연을 하나의 잣대로 관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설립목적에 따라 운영하게 되면 출연연이 살아날 것이다.』(생명연 L연구원)
정부는 출연연의 연구가 산업계에 도움이 돼야 하고 그래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라면 몰라도 2∼3년을 겨냥한 단기적으로 산업계에 필요한 기술이라면 기업들이 굳이 출연연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출연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 하나는 출연연 자율경영의 핵심인 기관장 임기다.
지난해 이른바 기관장 공모제를 통해 선임된 출연연 기관장들이 겪는 공통적인 마음고생은 출연연 내부통합이다.
출연연 내부에서 경쟁적으로 공모에 응하다 보니 파벌이 생겨 기관장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연연 기관장 공모에서 선임된 모 출연연 소장인 K박사는 『임기 3년 중 1년은 구조조정을 시행하느라 보냈고 올해는 뭔가 장기비전을 만들려고 하니 예산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년엔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새로운 기획을 시도할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는 기관장 공모제가 계속 시행되고 임기가 3년인 상황에서는 매번 기관장이 같은 경험을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출연연 기관평가를 철저히 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기관장의 임기는 연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최근 정부가 도입하고 있는 연구사업의 산·학·연 경쟁체제 도입이다.
자율경쟁을 통해 출연연의 연구효율성을 높인다고 하지만 출연연의 연구생산성 하향이 불가피하다는 게 출연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장기적으로 출연연에 맡기고 출연연간 합동연구를 통해 연구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연연을 제자리에 놓기 위해서는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사심없이 들어보고 걸러줄 여론 여과장치라도 만들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아야 한다.
7건이 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연구원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과제를 수주하고 결과를 내놓은 연구원들이 대접받아야 한다. 출연연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풍성해 보이는 속빈 강정식 과제 연구자가 내놓을 성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과 같은 연구과제 수주방식과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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